[강연] 중부내륙미래포럼,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북한은 1960년대에 친일 청산을 다했는데, 남한만 아직 일본 총독부 식민사학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북한이 우습게 안 보겠어요?”

찬바람을 뚫고 충북 제천 세명대 학술관 세미나실에 모인 1백여 제천시민들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강연에 뜨겁게 호응했다. 학생 시절 배운 우리 역사의 상식이 상당 부분 뒤집히는 충격을 ‘2019년도 중부내륙미래포럼 아카데미’를 통해 했기 때문이다. 강연 제목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한국사의 거짓과 진실’.

이 소장은 1988년 <사도세자의 고백>이란 책을 펴내 똑똑한 사도세자가 노론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주장해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이어 <송시열의 나라>라는 책에서는 ‘노론이 조선을 사대주의로 전락시켰으며, 이들은 나중에 나라를 판 주범’이라고 규정하는 등 한국사에서 뒤틀려 있는 비밀스런 부분을 건드려왔다.

그가 쓴 책마다 논쟁의 중심에 섰지만 ‘시대정신을 읽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게 역사학자의 역할’이라며 주류 학계에 편입되지 않은 채로 자기 신념을 지켜왔다. 지금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를 이끌며 뿌리 깊은 ‘식민사학’을 없애기 위해 뉴라이트 계열 역사학계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 24일 충북 제천 세명대에서 ‘2019 중부내륙미래포럼 아카데미’ 첫 강연자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나섰다. ⓒ 임지윤

국정·검인정 막론하고 역사 교과서 바로잡아야

이 소장은 먼저 중고교 국사 교과서의 오류를 지적했다. 그는 “현행 교과서는 국정, 검인정을 막론하고 모두 세종 때 최윤덕과 김종서가 4군 6진을 개척해 조선의 북방강역이 두만강에서 압록강까지로 확장됐다고 쓰며 고려가 만주는커녕 한반도 3분의 2 크기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로 표기하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실제 국경은 두만강 이북 700리에 위치한 철령(심양 남쪽)에서 공험진(흑룡강성 연안 부근)까지고 이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며 고려사 연구의 가장 기본이자 1차 사료로 분류되는 <고려사>와 <지리지>를 통해 설명했다.

▲ 고려 국경을 그린 국사 교과서(동아, 지학사) 지도. 이 지도뿐 아니라 모든 국정, 검인정 교과서가 고려 국경을 압록강에서 두만강까지로 표기하고 있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이덕일 소장은 주장한다. ⓒ 임지윤

실제로 고려는 서북방에 북계, 동북방에 동계라는 두 행정구역을 두어 관할했는데, 현행 교과서가 모두 동북방 동계의 북쪽 끝을 함경남도 남부라 표기한 것과 달리 앞서 언급한 두 사료에서는 ‘비록 연혁과 명칭은 같지 않지만 고려 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공험 이남에서 삼척 이북을 통틀어 동계라 일컬었다’고 나온다. 이 소장은 “이처럼 동계 북쪽 끝이 함경남도 남부라고 말하는 사료는 당대 어떤 1차 사료를 봐도 없다”며 “<태종실록>과 <세종실록>을 보면 동계가 공험이라고 더욱 명확히 나와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종실록지리지’의 ‘함길도 길주목 경원도호부’ 조에는 두만강 가에 위치한 경원에서 북쪽으로 700리 떨어져 있는 곳이 공험진이라고 쓰여있으니 의도치 않고는 잘못 해석할 수도 없는 일”이라 했다.

“카르텔이 지배한 오류투성이 ‘식민사학’”

“일본, 중국은 없는 사료도 만들어서 역사를 말하는데 한국은 있는 사료도 제대로 활용 못하고 있습니다.”

이 소장은 역사 해석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를 식민사관을 가진 역사학자들의 카르텔에서 찾았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사학자 ‘이케우치 히로시’가 우리나라 역사를 축소하기 위해 대 사기극을 벌였는데 남한 사학자들은 해방 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작정 추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사학자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해 중국, 일본 사학자들과 함께 동북아 역사 지도를 만드는데, 독도를 지우고 한강 이북은 중국 영토로 그리고 있다”며 “2008년부터 국고 47억 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가 그 실체”라고 밝혔다.

▲ 이덕일 소장 강연 PPT 화면. 이 소장은 “한국 역사 왜곡의 심각한 오류는 카르텔에 기반한 ‘식민사학’에 있다”고 말했다. ⓒ 임지윤

그가 말하는 식민사관의 핵심 이론은 한국사의 시간과 공간을 축소하는 두 가지 관점으로 귀결된다. 먼저 시간을 보면 단군 조선을 부인하고, 한사군이 요동에 있었음을 입증하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허위로 몰며 가야가 임나일본부라고 하는 등 한국사를 1천5백여 년의 짧은 역사로 축소한다. 또한 공간은 독도가 일본 땅이고, 대동강 유역에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낙랑군이 들어섰다는 ‘반도 역사관’을 주창하며 한국사의 본무대였던 대륙과 해양을 삭제하고 자국사를 좁게 인식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이 소장은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국은 중국 역사의 일부였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분노해야 할 한국 역사학계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며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카르텔’이 지배했기 때문”이라 했다. 그는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동북공정을 하고, 일본은 극우파의 조직적 차원에서 역사를 왜곡하며 과거 만행을 부인하는 등 역사 전쟁에 나서는데 대한민국은 조선총독부가 민족말살정책 일환으로 조작했던 일제 식민사관을 청산하지 못하니 그런 터무니없는 말이 국가 정상 간에 나오는 것”이라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 소장은 “지금이라도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국사 교과서를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모두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역사관이 바로 된 민족과 국가는 절대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며 “한국사 인식의 새 지평을 열자”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말이 새 지평이지, 이미 100년 전 백암 박은식 선생, 백범 김구 선생, 석주 이상룡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다 했던 말”이라며 “이제라도 그분들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을 지역에서부터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역사 공부와 지방자치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 행사가 끝난 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을 중심으로 제천시민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 임지윤

강연에 청중으로 참여한 김무순(가명)씨는 “원래 약초에 관심이 많아서 역사 공부를 시작했는데, 오늘 강연을 들으니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중부내륙미래포럼은 제천시와 단양군을 비롯한 중부내륙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중심으로 미래 발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 및 정책 세미나 개최, 아카데미 운영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함으로써, 국가와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자 뜻을 함께하는 인사들이 모여 2018년 11월에 창립한 순수민간단체다. 올해 강연은 3월 한수산 ‘군함도’ 작가를 비롯해 4차례(강지원 초대 청소년보호위원장 및 변호사, 진중권 미학자 및 동양대 교수, 정여울 여행작가) 더 예정돼 있다.


편집 :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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