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미 국무부 외신기자 태상호

종군기자와 추리작가, ‘밀리터리 스릴러’로 만나다

한 종군기자와 작가들이 함께 술을 마시던 자리였다. 종군기자는 세계 여러 분쟁지역 경험담을 술자리에 풀어놓았다. 타고 있던 자동차가 원격조종지뢰를 밟은 일부터 앉아서 볼일 보던 화장실 창문에 총알이 날아 들어온 경험까지. 그의 이야기는 헐리우드 영화의 특수효과가 아니라 온몸으로 보고 느낀 실전 속 기록이었다.

▲ 태상호 기자는 종군기자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정명섭 작가와 함께 '밀리터리 스릴러' <케이든 선>을 펴냈다. ⓒ최원석
숨죽이고 이야기를 듣던 어느 작가가 왜 그런 이야기를 책으로 안 쓰냐고 물었다. 종군기자도 공감했다. 자신의 경험담을 넣되 안보문제와 부딪히지 않을 만큼 상상을 가미하고 싶었다. 사실만 쓰면 르뽀기사가 될 것이고, 문학적 상상에만 의존하자니 전문성과 실제성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논의 끝에 글은 기자가 쓰고, 전반적인 원고는 추리소설 작가가 다듬어 소설로 내놓기로 했다. 미 국무부 외신기자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태상호 기자와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을 발간한 정명섭 작가가 공동으로 쓴 ‘밀리터리 스릴러’ <케이든 선>이 나온 배경이다.

태상호 기자는 <월간 플래툰>과 <미주 중앙일보>를 거치며 십여 년 넘게 여러 매체에 기고해 온 군사전문기자다. 2006년 <미주 중앙일보>에 객원기자로 들어간 뒤 미 국무부 외신기자단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 후 이라크에는 2007년 바그다드, 모술, 사마와 지역, 2008년 티크리트, 팔루자, 아르빌 지역 등 주로 분쟁지역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태 기자는 더 전문성 높은 취재활동을 위해 ‘전미총기협회 공인 사격교관 자격증’까지 따낸 ‘밀리터리 매니아’이기도 하다. 지난 24일 홍익대 앞 한 카페에서 연 출판 기념회에서 태상호 기자를 만났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적응이 안 된다”

-종군기자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렸을 때부터 군사용어나 무기에 관심이 많았다. <월간 플래툰>에도 1998년부터 기고를 시작했다. 그러다 2004년 어느 국방부 행사를 참관하다가 독일 종군기자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군인들 사진도 아니었고, 그냥 해질녘 풍경 속에 한 꼬마가 서 있는 사진이었는데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이 있었다.”

-보통은 참상이나 군 작전 상황을 촬영한 사진을 보게 되지 않나?

“종군기자들은 서로 참상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워낙 현장에서 험한 장면을 많이 보기 때문이다.”

-처음 종군취재를 갈 때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반대했다. 위험한 나라에 가는 걸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그 옆 나라에' 간다고 이야기했다. 처음 간 나라는 2006년 아프가니스탄이었는데 정신은 없었지만 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하지만 가보니 전쟁이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영화를 통해 전쟁을 봤다. 영화의 내용들은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지만, 실제 전쟁은 시나리오대로 되지 않더라.” 

 

▲ 종군취재를 나갈 때는 거의 군인들과 같은 복장을 갖춰야 한다. (위)비행기로 이동 중인 부대와 함께 탄 태상호 기자. (아래)아프간에서 군인들과 함께. ⓒ태상호

-‘전쟁’에 나가면 죽음을 자주 목격할 텐데 적응이 되던가?

“그 상황은 적응이 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취재 나가기 싫은 날이 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들면 ‘군인이 아니니 아프다고 할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다른 군인들이 문을 두드리면 ‘나갈까’하면서 카메라를 챙기고 있더라.”

-무엇 때문에?

“결국은 기자로서 욕심 때문이 아닐까? 내가 아니면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점, 나 아니면 남길 사람이 없다는 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종군기자’를 전장의 비극을 알려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사람들이라 생각하지만, 스스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건 너무 커다란 일이다. 한 사람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큰 나라의 전쟁을 모두 ‘커버’할 수는 없다. ‘이 전쟁은 비극이야, 빨리 끝내야 해’라고 생각하면 거기에만 포커스를 맞추게 되고, 놓치는 것들이 많다. 나는 대신 사진을 많이 찍어 그 상황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자신은 어떤 ‘종군기자’라고 생각하나? 
 
“사진기자들 사이에 종군기자를 크게 ‘평화 사진기자’와 ‘전쟁 사진기자’로 나누곤 한다. 나는 기록을 남기는 것에 더 의미를 둔다. 모든 기자들의 꿈은 로버트 카파가 찍은 것과 같은 사진을 찍는 것이겠지만, 그런 현장만 찾다 보면 매일매일 있는 소소한 상황들을 놓칠 수 있다. 흔히 하는 말처럼 ‘카파도 그 자리에 있어서 찍게 된 것’이라고 하지 않나? 자꾸 다니다 보면 찍게 될 것이다.”

종군기자가 욕심내면 사고 터져

 

▲ "꽤 심각한 표정이죠?" <케이든 선>의 표지사진. 인터뷰 중 태상호 기자는 익살스런 표정을 더 자주 지었다. ⓒ태상호
“종군기자가 욕심이 많으면 사고가 터지는데, 좋은 예가 있다. 우리나라 <국방일보>쯤 되는 <성조지>(Stars and Stripes) 기자가 미군과 함께 야간작전을 하던 중 야시경을 이용하는 대신 카메라 플래쉬를 터뜨리는 사고가 있었다. 작전 중에는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종군기자는 그 상황을 담아야지, 상황 자체를 바꿔서는 안 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장이 있다면?

“모든 전쟁은 각각 다르고 다 기억에 남는다. 여러 번 들은 질문이다. 전쟁이라는 현장은 항상 제각각 다르다. 다만 전쟁들을 여러 군데 다니면서 삶의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국내 언론의 다른 종군기자로는 누가 있나?

“본격적인 종군기자를 꼽자면 강원대학교 김상훈 교수님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김 교수님만큼 군사지식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드문데다, 직접 현장을 다니면서 기사를 쓰기 때문이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언론사 기자들은 안전한 호텔에서 브리핑을 통해 취재한다. 국내 언론사에서는 ‘종군기자’의 개념이라기보다 프리랜서 기자와 계약을 해서 취재를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라크에 있을 때 <SBS>에서 기자가 왔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프리랜서 기자였다.”

-미 국무부 외신기자단은 어떤 단체인가?

“한국의 외신기자클럽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미국 내 메이저 언론사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을 등록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미군 작전지역에서 취재하는 모임이다. 다만 최근의 미국-멕시코 국경 지역이나 동남아시아 지역처럼 ‘분쟁지역’이라고 보기 어려운 곳으로도 파견을 가게 된다. 계속 종군 취재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민 문제, 자동차산업 등 다른 현안에 대해서도 취재를 하게 된다. 외신기자단에 현안 ‘메뉴’가 떨어지면 그 중에서 원하는 지역에 가서 취재를 한다.”

한국정부 종군기자 대응 매뉴얼은 월남전 때 만든 것

▲ <단비뉴스>와 인터뷰 중인 태상호 기자. ⓒ 최원석 

-종군기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면?

“스스로 현재진행형이지, 이미 ‘종군기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갖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경험을 통해 한두 가지를 꼽자면 진취성과 배려심이 아닐까 싶다. 어떤 기자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이 취재를 할 때는 결정적인 것을 찾기 위해 진취적인 태도로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그만큼 배려심 또한 매우 중요하다. 특히 한국의 취재현장은 너무 과열되어 있다. 포토존에서 기자들끼리 싸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선지 사회부 생활하다가 종군한 기자들이 군인들과 싸우고 쫓겨나는 경우가 많다. 전쟁터에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사람들 앞에서 배려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야 만나기 피곤하면 안보면 그만이지만, 전쟁터에서는 그럴 수 없다.”

-분쟁지역 취재를 할 때 한국언론의 취재 관행이나 한계는 무엇인가?

“한국의 여러 언론사나 정부 관계자와 이야기해보면, 한국은 국제 문제에 대한 대외정보력의 폭이 좁다. 그 때문에 어떤 분쟁지역의 문제가 큰 영향을 줄지 잘 모른다. 해외에서 제일 관심을 갖는 이슈가 대북 문제라 그런지 분쟁지역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재미있는 건, 지금 한국 정부가 각국의 종군기자들을 대할 때 사용하는 ‘현장 매뉴얼’이 베트남 전 때 작성한 것이라는 점이다. 군사작전 관련 브리핑이 있을 때 한국군은 언론사 취재진에게 장관급 대우를 해준다. 말 그대로 잘해준다.”

그는 한국군이 취재 범위나 내용, 보안 문제보다는 식사나 숙소 제공 같은 문제에 더 신경을 쓴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