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여성청년동맹’ 독립군의 일기

1945. 8. 15.

▲ 유연지

해방. 드디어 해방이다. 대한제국이, 아니 상해임시정부가 새롭게 명명한 ‘대한민국’이 드디어 일본 제국주의의 무자비한 식민지에서 벗어났다. 연합군은 승리했고 일본군은 항복했다. 오랜 기간 함께 싸워온 동지들과 축배를 들었다. 내가 속했던 '여성청년동맹'과 그간 긴밀하게 연락해오던 임시정부 동지들이 모여 ‘자유 만세’를 소리높이 외쳤다. 이제는 남 나라가 아닌 우리 나라에서, 우리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을 모색하리.

옆 자리 경옥과 상섭은 ‘해방’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광복’을 위해 우리의 주권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논의로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호중과 봉애는 상해에서 남경으로 이동할 때 겪은 위험천만한 순간들을 회상했다. 나라를 위한 뜨거운 열기가 모두들 눈에 가득했다.

1952. 8.15.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4년이 되었다. '우리나라 만세'라는 구호가 이제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늘은 같이 독립운동을 한 만수와 집 앞 가게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만난 만수는 정부에서 일한다고 했다. 독립운동을 한 그에게 먼저 제의가 들어왔단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뜨거운 무언가가 다시 올라오는 듯했다. 만수에게 나도 정부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예전처럼 '우리'를 위해 나서고 싶었다. '네 남편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니? 여자가 하기엔 영 어려운 일이라…..'

기억상실이라도 걸린 걸까? 성별 상관없이 한뜻으로 나서던 때를 잊은 듯했다. 정부에서 일한다는 다른 남성 동지를 만나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우리를 잊은 걸까? '여성청년동맹' 동지들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여인과 부딪혔다. 경옥이었다. 경옥은 남편에게 맞아 얼굴이 부어있었다.

▲ 투사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는 대략 2천 명 정도다. ⓒ google

1985. 8.15.

나도 이젠 초등학생 손녀를 둔 할머니다. 손녀가 물었다. "할머니도 일본 식민지 시절을 겪었어?" “그래. 겪었지. 겪었다 뿐이냐? 해방을 위해 동지들과 맹렬히 싸웠지. '우리'를 위해.”

50여 년 전의 '여성청년동맹' 동지들을 찾아 나선 나는 같이 싸운 남성 동지들과 사뭇 다른 여성 동지들 모습에 절망했다. 언론도 출판사도 우리를 찾지 않았다. '우리'를 위해 싸웠건만, 그 '우리'에 나는 없었다. 상섭과 호중은 있었다. 만수도 있었다. 그러나 경옥과 봉애는 없었다. 가족이 생긴 뒤로는 '우리'를 위하는 게 나쁜 것이 되어버렸다. 남편을 버려두고, 자식을 버려두고 밖으로 나도는 여성으로만 평가될 뿐이었다. 희생하고 인내하는 것만이 덕목이었다.

뒷말을 기다리던 손녀가 학교에서 배우는 책을 가져와서 물었다. "할머니도 이렇게 할아버지 도와줬어?" 책은 문답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항일운동에서 여성들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어머니들은 항일운동을 하는 아버지를 위해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밤낮으로 아이들을 돌보며 가정을 충실히 지켰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40년이 흘렀지만, 여자인 나는 아직 해방이 안 된 신분인 것 같다.

* 글쓴이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입학예정자로서 재학생 캠프에 참가해 이 글을 쓰고 첨삭을 받았습니다.


편집 : 조현아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