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근무조건에 잦은 이직이 돌봄의 질 떨어뜨려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3부] 애 키우기 전쟁

숨 돌릴 틈도 없다.. 정신없이 아이들 돌보면 하루가 훌쩍

“엄마 안 돼!”

이른 아침 시간. 어린이집에 온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는 민서(3․가명)는 떼놓으려는 엄마 품에 필사적으로 파고든다. 보육교사가 뽀로로 장난감으로 아이를 유혹해보지만 소용없다. 출근 시간이 바쁜 엄마는 억지로 아이를 돌려 세운 뒤 종종 걸음으로 문을 나선다. 민서가 교사의 품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을 다른 아이들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린이집에 다닌 지 몇 달씩 된 아이들은 의젓하게 신발과 가방을 정돈한 뒤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

오전 10시. 동요 부르기, 색칠하기, 영어 말하기 수업 등이 이어진다. 아이들은 각자의 학습 파일을 갖고 모인다. 교사는 학부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아이별로 활동내용을 정리한다. 어린이집에서 뭘 배우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하고 걱정하는 학부모들에게 정보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색칠하기를 조금 일찍 끝낸 아이들은 소꿉놀이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교사가 다음 시간에 사용할 활동자료를 챙기는데, 민수(4․ 가명)가 바지에 오줌을 쌌다. 옷을 갈아입히고 자리를 정리하자마자 한 쪽에서 수정(4․ 가명)이와 준수(4․가명)가 울음을 터뜨린다. 빨간색 장난감 칼을 준수가 독차지하자 수정이가 준수의 팔을 꼬집고, 장난감으로 머리를 때리면서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사고는 이렇게 순식간에 일어난다. 우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수업준비를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점심시간을 맞았다. 

▲ 세살 반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전은선

아이들은 각자 지정된 자리에 앉아 콩나물국과 쇠고기 장조림, 볶음밥이 담긴 식판을 받고 숟가락질을 시작한다. 그런데 어린이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미리(3․가명)가 밥을 먹지 않는다. 훌쩍거리며 엄마만 찾는다. 밥을 먹으라고 달래는 교사의 말에도 울기만 하던 미리가 30분 쯤 후에 입을 열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밥 먹여 주세요.”

교사는 밥을 숟가락으로 뜨는 법을 차근차근 가르쳐준다. 혼자 밥 먹을 줄도 모른 채 어린이집에 온 미리는 그렇게 한 가지 씩 배워 나간다. 식사 후 아이들은 차례로 줄을 서서 이를 닦은 뒤 30분쯤 뛰어논다. 그 사이 교사들은 아이들이 낮잠을 잘 이불을 펴고, 짬을 내어 급한 점심을 먹는다. 하지만 영수(3․가명)가 기저귀에 ‘응가’를 하면서 담당 교사의 짧은 휴식시간은 날아가 버렸다. 

아이들 보육에 학부모 상담까지.. 지친 교사들의 한숨
 
아이들은 오후 1시부터 낮잠을 잔다. 아이들을 재워 놓고 보육교사들은 청소를 한다. 대걸레로 바닥을 닦아내고, 창틀과 현관 바닥에 이어 자전거와 각종 장난감도 물걸레로 닦는다. 플라스틱 공 5백여 개가 있는 대형 텐트 바닥을 닦고 나면 점심때 허겁지겁 먹은 밥은 이미 소화된 지 오래다. 청소를 마치면 아이들이 잠에서 깨는 4시까지 한 숨 돌릴 수 있지만 보육일지를 쓰고, 다음 수업준비를 하느라 마음 편히 쉬긴 어렵다. 아이들이 한 명씩 일어나면 집에 보낼 준비를 하면서 동화책을 읽어준다. 입으론 동화책을 읽지만 자기도 모르게 깜빡 졸다 화들짝 놀라는 경우도 있다. 점점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울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육교사는 아이들을 보느라 식사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오후 시간이 그나마 휴식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 서울시공식블로그
오후 6시. 20여 명의 아이들 중 샛별이(4․가명)만 빼고 다 집에 갔다. 어린이집의 초인종이 울릴 때 마다 샛별이는 “엄마!” 하며 현관문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들어 온 사람이 자기 엄마가 아닌 것을 알고는 목을 놓아 운다. 샛별이의 엄마가 올 때까지 교사도 울고 싶은 심정으로 현관문을 바라본다. 

보육교사들은 아이를 데리러 오는 부모님을 상대로 상담도 해야 한다. 수첩에 가정통신문을 일일이 적어주지만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얘기를 해준다.

"오늘 영어수업을 했는데, 아주 잘 따라했어요. 그래서 상도 받았어요. 예전에는 낮잠을 재울 때 힘들었는데, 오늘은 낮잠을 잘 자더라고요. 간식은 수박을 먹었어요."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지 못한 엄마들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알고 싶어 한다.

아이를 다 보내고 나면 보통 저녁 7시쯤 된다. 아침 7시 무렵 출근해서 12시간이 지났다. 긴 하루였다.

보육 교사들의 처우 개선이 보육 선진국으로 가는 길

“맘대로 아프지도 못해요.”

6년 동안 보육교사로 일해 온 이자영(28.가명.A어린이집) 씨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하루 종일 이렇게 종종걸음 치는 일을 계속하다보면 피로가 쌓이고 몸살도 나지만 한 사람이 빠지면 다른 보육교사에게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 돌아가기 때문에 아프단 말도 못한다고 한다.

▲ 아이들이 한 명씩 일어나면 집에 보낼 준비를 하면서 동화책을 읽어준다. 입으론 동화책을 읽지만 자기도 모르게 깜빡 졸다 화들짝 놀라는 경우도 있다. ⓒ전은선

하지만 이렇게 장시간 일하고 보육교사들이 받는 월급은 100만 원대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의 보육시설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9년 기준으로 국공립 보육시설 교사의 평균 월급은 155만 원, 이씨와 같은 민간어린이집 교사는 평균 118만8000원, 가정형(정원 20명 이하)어린이집 교사는 월 102만원이다. 거의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고용보험 등 4대 보험료를 내고 나면 손에 쥐는 월급이 100만 원을 밑도는 교사들도 많다.

이 교사는 “매일 12시간씩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정말 힘들다”며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늘 웃는 얼굴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재롱으로 피로를 풀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고된 일과와 낮은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교사들도 많다.

2010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어린이집의 평균 보육교사 수 4.2명 중 절반인 2.1 명이 1년 내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아예 그만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보육교사들이 이렇게 저임금의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면서 높은 이직률을 보이는 것은 영유아의 성장발달과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유승연 서일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지난 6월 서울 시청에서 열린 보육교사 처우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교사의 낮은 임금은 사회적으로 우수한 인력이 보육현장에 투입되는 것을 막는 요인이 된다”며 정부지원 확대를 촉구했다. 현재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보육교사 3급 자격증을 따서 취업할 수 있는데 열악한 근무여건에 실망해 자격증을 사장시키고 있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유인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광주시의 경우 올해 7월부터 6개월 이상 근무한 보육교사에게 월 5만원씩, 1년 이상 근무자에게는 월 10만원씩 처우개선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보육교사 처우개선비는 지방자치단체의 자립도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기 때문에 최소 4만원에서 최대 25만원으로 차이가 난다. 황재만 전국어린이집연합회 정책위원장은 “보육교사 처우개선비를 지방예산에서 차별 지급할 게 아니라 중앙 정부에서 일괄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만 5세 누리과정’을 도입하는 등 보육제도를 개편하면서 어린이집 교사들의 급여 개선을 지원하겠다고 밝혀 교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박석희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와 함께 보육시설의 일일 운영시간을 현행 12시간에서 8시간으로 조정하고 그 이상의 근무에 대해선 연장근무 수당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보육노조가 보육교사의 고충을 이야기하며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총 부산지부 홈페이지

복지선진국인 스웨덴의 경우 국공립보육시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보육교사는 공무원 신분을 보장받는다. 임금 등 처우가 안정적이어서 이직률이 낮고, 경험이 풍부한 경력 교사의 비율이 높다. 전체 보육교사 중 40세 이상, 15년 이상의 장기 근속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스웨덴이 세계 최고의 보육 수준을 자랑하는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보육시설은 90% 이상이 민간에 의해 운영되고, 보육교사는 2~4년 근속자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송승민 수원대 아동가족복지학과 교수는 “부족한 국공립 보육시설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대폭 확충하고 보육 교사들의 직·간접적인 처우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모들도 어린이집의 각종 사고 등이 열악한 보육교사의 처우와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8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전은주씨(28)는 “언론을 통해 어린이집 사고 소식이 나올 때 마다 엄마 입장에서 불안하다”며 “보육교사를 믿고 아이를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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