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㊷ 재활용 현황과 과제 (중)

지난 14일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의 파리바게뜨 의왕오전점. 하루 평균 150여명이 찾아오는 중소 규모 가맹점이다.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1시간가량 관찰한 결과, 고객 20여명 중 한명도 일회용 비닐봉투를 쓰지 않고 가방에 상품을 넣거나 손에 들고 갔다. 그 중 세 명은 개당 100원에 파는 재생종이봉투를 사용했다.

초기엔 ‘공짜봉지 왜 안주나’ 욕하는 고객도 

 
경기도 의왕시의 파리바게뜨 의왕오전점. ‘자원절약을 위해 봉투를 유상판매한다’는 안내문이 매장 내에 붙어 있다. 1회용 비닐봉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간간이 재생종이봉투를 찾는 고객들이 있었다. ⓒ 홍석희

프랜차이즈 빵집 파리바게뜨에서 비닐봉투가 거의 사라진 것은 지난 10월 1일부터 전 매장에서 벌이고 있는 1회용품 줄이기 캠페인 덕분이다. 고객들에게 장바구니 사용을 권장하고 필요한 경우 재생종이봉투를 판매한다. 공짜로 주던 일회용 비닐봉투는 병에 든 잼 등 무거운 제품을 살 때에 한해 50원에 판매하고 있다.

시행 초기에는 고객들의 반발도 있었다. 계산대 앞쪽에 봉투 유상판매 안내문을 붙여놨지만 어떤 사람은 막무가내였다. 점주 임성은(35·여)씨는 “욕하거나 상품을 집어 던지는 고객도 있었다”고 말했다. 임씨는 “환경오염에 관한 기사나 보도자료를 직접 보여주며 설명하기도 했다”며 “지금은 고객들도 익숙해져서 장바구니 등에 직접 들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임씨는 “10년째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작은 가게에서도 일회용품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게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며 “돈을 벌고 안 벌고를 떠나 환경오염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정부가 지금보다 더욱 강력하게 친환경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매장을 일주일에 3회 정도 이용한다는 주부 이지연(47·경기도 의왕시)씨는 “처음에는 갑자기 봉툿값을 받는다고 하니 불만스러웠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장바구니를 챙긴다”며 “환경오염 해결에도 도움 된다니까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슈퍼마켓 비닐봉지 아예 사용금지

파리바게뜨는 환경부가 관련 업계와의 협약을 통해 1회용품 사용을 줄이기로 한 정책에 따라 지난 7월 자율협약을 맺었다. 올해 말까지 비닐봉투 소비량을 90퍼센트(%) 줄이는 내용이다. 제과점 뚜레주르도 내년 1월까지 비닐봉투 사용량을 80% 줄이는 내용의 자율협약을 맺었다. 이마트 등 대형마트 2000여곳과 슈퍼마켓 1만1000여곳은 그동안 비닐봉투를 유상 제공해 왔으나 지난달부터는 아예 비닐봉지 사용 자체가 금지됐다.

▲ 서울 한남동의 한 동네 슈퍼에 “서울시 시민실천운동으로 검정비닐봉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됐으니 개인 장바구니를 준비해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 장은미

민관협력기구인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의 ‘온실가스 1인 1톤(t) 줄이기 실천수칙 자료집(2016년)’에 따르면 석유화학제품인 비닐봉투는 생산에서 폐기까지 1장당 47.5그램(g)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국내 주요 제과업체들은 연간 비닐봉투 2억3천만 장을 쓴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를 줄이면 30년생 소나무 165만 그루를 심는 효과(온실가스 1만925t 감축)를 기대할 수 있다.

환경부는 지난 5월 스타벅스, 엔젤리너스, 파스쿠찌 등 16개 커피전문점과 맥도날드, 버거킹, 롯데리아 등 5개 패스트푸드점과도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다. 업체들은 1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페트(PET)와 폴리스티렌(PS)이 섞여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용기의 재질을 단일화할 것, 유색 종이컵을 단색으로 바꿔 재활용률을 높일 것 등을 약속했다.

커피전문점·패스트푸드점 1회용품 줄이기도 성과

이런 노력은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자원순환사회연대가 지난 8월 21일부터 이틀간 수도권 지역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1052개 매장을 모니터링한 결과 매장에서 사용된 1만2847개 컵 중 머그잔 등 다회용컵이 81.4%였다. 특히 634개(60.1%) 매장에서는 다회용컵만 모두 사용됐다. 이에 앞서 6~7월 조사 때는 226개 매장 중 66개 매장만이 100% 다회용컵을 사용해 29.2%에 그쳤다. 1회용컵 수거업체의 수거량도 6월 대비 63%로 감소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아직 엇갈린다. 김근원(32·부산 사하구 괴정동)씨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나오는 경우도 많은데 주문과 함께 마시고 갈지 결정을 해야 하니 난감할 때도 있다”며 “그동안 쉽게 1회용 잔을 썼는데 카페에서 잘 안주니 불편함이 있다”고 했다. 이성민(31·부산시 남구 대연동)씨는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익숙해지니 크게 상관없는 것 같다”며 “다만 중국발 쓰레기 대란 이후로 급하게 진행되는 느낌이어서 기업이나 직원들은 좀 힘들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 경기도 안양시 스타벅스 범계로데오점에서 고객이 주문한 음료가 유리잔에 종이빨대를 꽂은 채 나와 있다. 커피전문점들이 환경 캠페인을 본격화하면서 매장에서는 1회용컵에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기 어렵게 됐다. ⓒ 홍석희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1회용컵 사용량은 260억개다. 일회용컵 1개를 만들고 폐기하는데 11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연간 사용량을 계산해보면 25만7400t의 이산화탄소가 나오는 셈이다. 이를 줄이면 30년생 소나무 5380만 그루를 심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우리나라는 종이컵과 비닐, 페트병 등 1회용품 사용량이 세계 최고수준인 반면, 재활용률은 매우 낮다.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KPRC)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출고된 페트병 가운데 재활용이 용이한 1등급 판정을 받은 것은 연간 1.5%에 불과했다. 또 국내 종이컵 재활용률은 10%, 플라스틱은 34% 수준이다. 재활용이 어려운 이유는 단일 재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금속 캔, 유리병 등은 재활용이 비교적 쉽기 때문에, 전체 분리수거 재활용 비율은 70%대를 유지하고 있다.

KPRC연구소 기술개발팀 권오준(37) 대리는 지난달 12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2, 3등급 포장재의 경우 복합재질이라 재질별로 분류하는 등 추가공정을 거치는데 그러면 추가 비용이 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속 캔이나 유리병은 80~90% 정도가 애초에 1등급인데 페트병은 1등급 비율이 현저히 낮아 현재 여러 업체와 협력을 통해 1등급 비율을 늘리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5대 편의점 업체는 이와 관련, 각사 로고가 새겨진 아이스컵 대신 민무늬 아이스컵을 도입하고 있다. 지난 6월 세븐일레븐이, 8월엔 업계 1위인 씨유(CU)가 아이스컵 도안을 바꿨다. 이어 10월에는 지에스(GS)25, 미니스탑, 이마트24도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연간 4만개의 편의점 아이스컵이 재활용될 수 있다.

▲ 플라스틱 재질이라도 제품 홍보를 위해 접착제로 라벨을 붙이거나 글자를 새기면 재사용이 어렵다. 환경부는 제조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각종 용기의 재활용률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 환경부

순환자원 회수 로봇 ‘네프론’ 실험

1회용품을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과정에는 인공지능 로봇 등 기술이 접목되고 있다. 2015년 설립된 직원 13명의 벤처기업 수퍼빈은 ‘네프론’이라는 인공지능 자원순환 로봇을 개발, 서울 과천 구미 등 전국 36곳에서 가동하고 있다. 기존 재활용 용기 회수장치는 모양이 찌그러지거나 바코드가 훼손되면 기계가 인식을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반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네프론은 3D 물체인식을 통해 재활용 용기를 감지, 분류하고 가격 환산과 적립도 척척 해낸다고 업체는 설명했다.

▲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설치된 네프론을 이용하고 있는 주민. 캔이나 페트병을 구멍에 넣으면 기계가 자동으로 인식해 포인트를 적립한다. 사용자가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고 네프론 회사인 수퍼빈 홈페이지에 가입해 계좌번호를 남기면 송금해 준다. 1포인트가 1원인데, 캔은 1개당 15포인트, 페트병은 10포인트다. ⓒ 장은미

수퍼빈 도현탁(35) 매니저는 지난 10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우리가 기기 설치에서부터 관리, 수거까지 총괄하고 있어 강점이 있다”며 “앞으로 전국 확장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네프론에서 수거된 캔, 페트병 등은 수도권에 2곳, 지방 2곳 에 있는 수거업체에서 처리한다.

▲ 수퍼빈 도현탁 매니저.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숲박스’에 지난해 11월 설치된 네프론 기계는 자원순환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교육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네프론을 관리하는 수퍼빈 손서연 책임은 “대공원에 축제가 참 많은데 말 그대로 쓰레기가 넘쳐난다”며 “재활용이 더 즐겁고 일상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네프론을 자주 이용하러 온다는 주민 박승순(70·서울시 능동)씨는 “동네마다 있으면 재활용을 독려하는 데 도움이 될 텐데 주변에 많이 없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설치된 수퍼빈의 숲박스. 인공지능 자원순환 회수 로봇인 네프론을 체험하면서 재활용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다. ⓒ 장은미

네프론 외에 공익법인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가 2015년 말부터 전국 대형마트 등 108곳에 무인회수기를 설치, 운영하고 있지만 기기점검과 운영비 등 부담으로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연구소인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43) 소장은 지난달 5일 <단비뉴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환경부의 재활용 정책에 대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일관성 있게 마련된 만큼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과거에 보여주기식 대책을 급조해서 무조건 높은 목표치를 제시하고 실제 집행을 하지 않는 악습도 많았던 만큼 언론이나 시민단체, 학계 등에서 환경부 정책에 집요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 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편집자)

① “아이들 미래 위해 원전 말고 안전!”

② '블랙스완' 부인하다 일본도 당했다

③ 생존배낭 챙겨 두고 ‘쿵’ 소리에도 깜짝

④ 동해안 원전에 쓰나미 덮칠 수도

⑤ 100만 명 ‘7시간 내 대피’ 가능할까

⑥ 사고 은폐, 불량부품에 근무 중 마약도

 사용후핵연료 저장건물 테러 무방비

⑧ ‘핵쓰레기통’ 10만년 묻을 땅 찾아야

⑨ “핵재처리는 원전 수백년 더 짓자는 것”

⑩ “내 손으로 원전 짓고 암 환자 됐소”

⑪ 아이 몸에도 삼중수소, 어른은 암 속출

⑫ ‘173등짜리 공기’에 병드는 한국

⑬ 발암 먼지에 사람도 게도 까맣게 '속병'

⑭ 석탄 함정에 빠진 '세계 4대 기후악당' 

⑮ "일본이 당한 재난, 한국에 닥칠 수도"  

⑯ 끔찍한 재앙 후에도 여전한 ‘거짓말’

 '싼 전기 공급' 매달리다 원전·석탄 중독

⑱ "후쿠시마 7년, 일부 마을 오염 더 증가"

⑲ 잇단 참사에도 원전을 더 짓자는 세력

⑳ 그 기사는 돈 받고 쓴 것이었다

㉑ 돈 풀어 '친원전 이데올로기' 주입

㉒ 폭염·혹한···지금은 '기후붕괴 시대'

㉓ '기후 악당' 한국에 '온난화 징벌' 본격화

㉔ '트럼프 암초'에서 파리협정을 구하라

㉕ EU 탄소 40% 줄일 때 한국 83% 증가

㉖ '화석연료 제로' 밀어붙이는 '주민의 힘'

㉗ ‘말뫼의 눈물’ 딛고 첨단 친환경 도시로

㉘ 100% 에너지자립 마을, 실업률은 0%

㉙ 태양광·풍력으로 가는 유럽 최강 경제

㉚ 원전대국 프랑스에 태양광전기 수출

㉛ 바닷바람 타고 세계 1등 기업 배출

㉜ 자전거 타는 '날씬이'와 '튼튼이'의 나라

㉝ 태양과 바람의 나라, 어제의 영광이여

㉞ 경제위기, 태양세... 긴 터널 지나 새 출발

㉟ ‘바람은 모두의 것’ 제주 이익공유 첫발

㊱ 무시당한 주민의 분노가 ‘결사반대’로

㊲ 해상풍력, ‘제2 조선업’ 도약 가능할까

㊳ 시민 주도 햇빛발전소, ‘원전 대체’ 시동

㊴ 환경 논란에 중금속 ‘가짜뉴스’도 기승

㊵ “국내 옥상에 원전 44기분 태양광 가능”

㊶ 플라스틱 대신 종이·쌀 빨대 각광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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