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김해시 “단절된 구간 벨트화” 구봉초등 학부모 “유물도 없는 곳”

거북아 거북아(龜何龜何) 머리를 내어라(首其現也)
내놓지 않으면(若不現也) 구워서 먹으리(燔灼而喫也)

가야국 시조인 김수로왕 탄생 신화에 등장하는 ‘구지가(龜旨歌)’다. <삼국유사>에는 하늘의 소리에 따라 아홉 부족장이 땅을 파헤치며 이 노래를 부르자, 하늘에서 여섯 개 알이 내려와 수로왕과 5가야의 임금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수로왕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경남 김해시 구산동 구지봉(龜旨峰)이 최근 ‘가야사 복원사업’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김해시가 구지봉 일대에 ‘가야사 복원 2단계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부지 안에 있는 학교의 이전을 추진하자,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유물도 없다는데 굳이 학교를 옮겨 아이들에게 불편을 끼쳐야 하느냐”,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멀쩡한 학교를 없애고 잔디광장을 만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발한다. 이들은 6개월째 “학교 이전을 막아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 “가야사 복원” 지시 후 김해시 사업 되살려

김해시가 추진중인 ‘가야사 복원사업’은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가야역사문화 복원정비사업’이라는 명칭으로 시작됐다. 1단계 사업에서는 구지봉과 대성동 고분군, 봉황동 유적을 복원해 정비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구지봉 일대와 대성동 고분군 사이를 발굴해 봉황동 유적까지 연결하는 ‘가야역사문화 벨트’를 계획했으나, 사업용지 매입과 예산 문제로 중단됐다.

잠잠하던 ‘가야사 복원사업’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지금 국면과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며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지방정책공약에 꼭 포함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후 사업은 급물살을 탔다. 김해시는 가야 관련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는 구산동 일대 9만3485㎡를 사업 대상지로 선정하고, 지난 9월에는 문화재청에서 문화재보호구역 지정을 받았다.

구봉초등학교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5월 지역신문을 통해 ‘가야사 2단계 조성사업’이 다시 추진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학부모들이 반발했고, 6개월째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6월 김해시청 관계자를 면담했으나 사업추진과 학교이전 관련 내용에 관한 정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7월에 김해교육지원청 비공식 면담에서야 구봉초교가 4개 학교로 분산돼 폐교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비상대책위 이은영(44) 위원장은 “구봉초교가 가야사 2단계 조성사업 발굴대상지역에 포함돼 있는데도 김해시가 교육수요자인 학부모의 의견수렴 절차 없이 사업에 착수했다”며 “문화재 보호구역의 경관 훼손 방지와 완충지 역할 등 행정편의적 발상에서 이전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 김해시가 ‘2단계 가야사 복원사업’을 추진중인 구지봉과 구봉초등학교 일대(사진 위)와 그곳에 들어서게 될 '가야의 터' 조감도(아래). ⓒ 김해시

학부모 넉 달째 집회 “멀쩡한 학교 내보내고 잔디광장 조성”

학부모들은 7월 18일 ‘구봉초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제2단계 가야사 문화사업에 대한 구봉초 학부모 간담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구봉초 존치를 위한 집단 대응에 들어갔다. 비대위는 지금까지 넉 달여 동안 김해시청과 김해교육청 간담회, 경남교육감 면담과 문화재청 정책질의 등으로 학교 존치를 강하게 요구해왔다. 7월 27일 구봉초교 시민의 종탑 앞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모여 학교 이전 반대 촛불집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금요일마다 여섯 차례 촛불집회를 열었다. 지난 9월에는 서울 고궁박물관 앞에서 상경 기자회견을 열고 이전 반대를 대외적으로 알렸다.

검은색 옷을 맞춰 입은 학부모 9명은 이날 회견에서 “학교가 가야사 복원사업과 유적보호를 위한 축제 대체지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며 학교 이전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영호남 화합과 상생발전을 위해 가야사 복원을 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지만, 지금 김해에는 현대판 순장에 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은 “중요한 유적 발굴을 위한 것도 아니고, 가야사 복원하는 데 경관을 해친다는 등의 이유로 멀쩡한 학교를 내보내고 그 자리에 잔디광장을 조성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김해시청에서 구봉초 비대위는 학교이전에 관한 민간협의체 구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구봉초등학교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9일 김해시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학부모 비상대책위

학부모 85%가 존치 의견

이은영 구봉초 비대위원장은 “초중등교육법 에 따르면 초등학교는 통학거리 1.5km(도보 30분) 이내를 기준으로 통학구역이 설정돼 있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 1.5km 내에 324명이나 되는 학생을 수용할 학교도 없고 신설 부지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를 이전하는 것은 학생들이 차를 타고 등교하라는 말인데, 지금 이 나라에 초등학생이 대부분 차를 타고 통학하는 학교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구봉초교는 1980년 개교해 학생수가 275명이었으나 혁신학교인 행복학교로 선정된 뒤 학생수가 늘어나 지금은 324명이 재학중이다. 비대위 한 학부모는 “학교를 옮기게 되면 학생들이 차가 많이 다니는 큰길을 몇 개나 건너 다녀야 한다”며 “통학버스를 탄다고 해도 병설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그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통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학교를 이전하거나 통폐합하려면 학부모 동의가 65%를 넘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학교 학부모 85%가 현 위치 존치 의견”이라며 “그럼에도 김해시는 가야사 2단계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전논의 한번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2012년 발굴조사에서도 발견된 유물이나 유적이 없었는데, 대성동고분군 인근이니 가야시대 고분이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근거로 구봉초등학교를 사업지구에 포함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김해 구봉초등학교 전경. ⓒ 최준혁

6개월만에 구성된 기관-학부모 협의체, 접점 못 찾아

학부모의 반발이 계속되자 김해시는 지난 10월 보도자료를 내고 “사업추진을 위해 사업구역내 교육시설 이전 검토가 필요함에 따라 관계기관과 협의체를 구성해 교육시설 이전방안 및 대책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해시는 지난 8일 김해시청과 김해시의회, 김해교육지원청과 경남도교육청이 참여하는 2단계 가야사 복원사업 논의를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구봉초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도 협의회 구성원으로 포함했다.

그러나 김해시가 이 사업을 원래 계획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구봉초교 등 사업부지 내 교육시설 이전이 불가피한데, 학부모들은 절대다수가 학교 존치를 주장하고 있어 접점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학부모 비대위는 “경주 황남초등학교와 전주 한옥마을 성심여고 등 문화재보호구역 안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교육시설들이 있다”며 “구봉초교도 같은 이유로 현재 있는 그대로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해시 “단절된 구간 벨트화 하려면 이전 불가피”

학부모들의 반발에 대해 김해시 관계자는 “사업대상 구역은 구지봉과 대성동 고분군에 걸쳐 분포한 유적군으로 가야시대 문화 복원을 위한 중요한 구역”이라며 “구지봉과 대성동 고분군 사이를 연결하는 사업추진을 위해서는 구역 내 교육시설 이전 검토가 불가피한 상황이다”고 밝혔다. 학부모들의 반대에도 이전할 뜻을 내비친 것이다.

그는 “교육시설로 단절된 구간을 벨트화하여 복원·정비하고 노후화한 교육시설도 이전해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자 한다”며 사업취지를 덧붙여 설명했다.

김해시는 학교이전과 발굴조사를 완료하는 대로 구지봉과 대성동 고분군의 단절된 구간을 연결하고 ‘가야의 터’ 광장을 조성할 예정이다. 여기에 가야문화권 유물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가야역사문화센터를 유치하고, 초·중·고를 대상으로 가야역사문화권을 홍보하여 수학여행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한편, 23일에는 학부모를 포함하는 민관협의회가 열렸다. 김해시의회 관계자는 “이번 협의회는 본회의를 위한 준비단계에 불과하고, 학부모들의 의견 차이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회의를 마쳤다”고 했다.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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