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압축풀기] 제작기 ① 거창 기쁨농원 김강진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한다’는 격언은 틀렸다. 때로는 집착이라는 ‘무거운 등짐’을 벗어야 길이 보인다.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도 '공채'를 포기했기에 큰 업적을 낼 수 있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뉴스>에서 영상부장을 지낸 이현지 씨가 취업 대신 창업을 택했다. 서울시 지역상생교류센터와 협력 관계를 맺고 ‘상생상회’의 활동상을 알리는 <미로우미디어>를 설립한 것이다. 이화여대 미대 출신이면서 저널리즘을 제대로 배운 그는 자신과 취재원의 압축된 삶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그의 ‘작품’들을 <단비뉴스>에 싣는다. [편집자]

‘압축풀기’라는 개념이 떠오른 것은 내 삶이 딱딱하게 압축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년 간, 서류를 내고 필기시험을 보고 몇 차례 면접을 보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한 한 방송사 공채에서 떨어졌을 때, 괴롭기보다는 숨통이 트였다. 1%만 살아남는 경쟁에서 빠져나오면서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때마침 지역상생교류센터 상생상회 안 작은 공간의 전시기획을 맡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지역 상생’이란 주제에서 정상적·일반적이라 일컬어지는 삶에서 비켜난 삶을 연상했다. 그동안 우리는 압축성장을 상징하는 서울에서 개성과 여유, 정체성을 압축하며 살아왔다. 입시, 취업, 내집 마련의 전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다. 지역이 균형발전한다면 지역만 상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도 상생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컴퓨터에서 압축된 파일을 풀 때 나오는 “여기에 압축풀기”라는 말을 따와 전체 컨셉으로 잡았다.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기형적으로 압축된 사회를 풀고, 그런 사회에 살며 경쟁에 몰려 물리적·정신적으로 압축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풀어내고자 했다. ‘여기’는 수도권 중심의 관념에서 벗어나, 각 지역이 모두 ‘여기’라는 사실을 의도했다. 첫 주제로 각자의 ‘여기’에서 농사를 짓는 청년들을 조명했다.

▲ 서울 등 대도시에서 청년들이 귀농을 하고 있는 추세다. ⓒ pixabay

“부장님! 귀농, 지금 하면 안 됩니까?”

살갗까지 찌는 듯 무더웠던 지난 8월, 경남 거창으로 김강진(36) 씨를 만나러 갔다. 그는 일할 때 늘 입는 편한 복장으로 우리를 맞았다. 푸근한 표정과 말투, 행동으로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강진 씨는 인터뷰 내내 “농사 짓는 일이 너무 힘들다”고 했지만, 자꾸만 그의 얼굴 밖으로 허허허 웃음이 삐져 나왔다.

강진 씨는 5년간 조선소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뭐든 열심히 하는 것을 좋아해, 유독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돈은 꽤 벌었지만 삶은 팍팍하기만 했다. 조선업 불경기로 서른 살에 백수가 된 뒤 치열하게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 행복하지?’ ‘어차피 열심히 살 거라면 나만의 길을 가자!’ 창업할 돈도 아이디어도 없던 그는 귀농을 결심했다.

강진 씨는 회사에 다닐 때 부장님께 “은퇴하면 뭘 하실 겁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했다. 대부분 “어, 시골 가서 농사 짓고 살 거야”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처음 귀농계획을 밝혔을 때 그분들 반대가 가장 심했다. 그냥 참고 회사에 다니라는 거였다. 그는 반문했다. “부장님, 나중에 은퇴해서 귀농하실 거면 지금 하면 안 됩니까?” 그 무모하고 막연한 생각으로 여기 거창에 와서 농사를 시작했다.

강진 씨에게 농사는 그저 힘든 일이다. 한순간도 안 힘들 때가 없다. 하지만 농사야말로 그가 하고 싶은 일이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다. 대도시에서 회사에 다닐 때 하루하루 자신을 소진하며 살았다면, 귀촌해 농사를 지으며 그는 ‘다음’을 꿈꾼다. 그에게 농사는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한 과정이다. 이를테면 산속에 나만의 집을 짓는 꿈으로 말이다.

▲ 김강진 씨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현지

편집: 고하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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