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언론윤리 전문가 김지영 동양대 교수

“가짜뉴스가 아니라고 해서 다 진짜뉴스인 것은 아닙니다.”

경향신문 편집국장과 편집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김지영(65) 동양대 초빙교수가 지난 24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언론윤리 특강에서 ‘진실하지 못한 뉴스’가 넘쳐나는 현실을 비판했다. 그는 ‘가짜뉴스와 진짜뉴스 그리고 비진실 뉴스’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의도적인 허위조작정보를 말하는 ‘가짜뉴스(fake news)’ 외에 광고성 기사 등 ‘비진실 뉴스’를 구별해 내는 안목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8일 서울 논현역 부근의 한 카페에서 김 교수를 만나 더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발언 계기로 가짜뉴스에 주목

▲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짜뉴스 문제에 주목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김지영 동양대 교수. 김 교수는 1979년 경향신문 기자로 입사한 후 사회부장·논설위원·편집국장·편집인을 거쳤고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 박선영

지난 2011년 한국 언론의 ‘책임회피형 기사쓰기’를 비판한 책 <피동형기자들>을 펴내기도 한 김 교수는 “가짜뉴스 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언론인의 수호성인’인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의 날이었던 지난 1월 24일 특별담화를 통해 “가짜뉴스는 이브를 유혹한 뱀처럼 파탄을 초래한다”며 “언론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니 가짜뉴스 근절을 위해 책임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김 교수는 이를 듣고 가톨릭 신자이자 언론인으로서 각별한 소명의식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가톨릭신문에 한 달에 한 번 연재하는 칼럼을 통해 ‘가짜뉴스를 분별하는 안목’을 강조하는 등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를 주체적으로 해독하고 활용하는 능력) 교육을 시작했다. 지난 17일에는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초청으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가짜뉴스를 주제로 강의하기도 했다.

“17개 수도회 70여 명의 수도자가 참석했는데 지금까지 가르친 어떤 학생들보다 수녀님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했어요. 강의가 끝난 후 수녀님들이 가짜뉴스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졌다고 하더군요.”

▲ 지난 1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김지영 교수. ⓒ 김지영 교수 제공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에 넘치는 허위 정보

언론학계에서는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 보도의 형식으로 유포된 거짓 정보’를 가짜뉴스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김 교수는 백제 30대 무왕이 신라 26대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퍼뜨린 ‘서동요’를 포함해 가짜뉴스의 역사는 매우 길다고 말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이 조선인에 대해 악의적으로 퍼뜨린 허위정보는 참극을 불러온 가짜뉴스로 꼽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가짜뉴스는 페이스북, 유튜브, 카카오톡 등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확산한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구글, 페이스북 등 정보기술(IT)기업의 검색 알고리즘이 개인별로 선호하는 정보들을 몰아주어 편식을 초래하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 때문에 가짜뉴스 문제는 증폭된다.

김 교수는 “필터버블 현상이 확대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 취향에 맞는 뉴스만 골라보고, 반대되는 주장은 무시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로 인해 인류는 진실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탈진실(post truth)’에 직면하게 됐다”고 말했다. 탈진실은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하는데,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를 설명할 때 많이 거론된다.

김 교수는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IT 기업들은 디지털 뉴스 중개자인 동시에 가짜뉴스의 온상”이라며 “이들이 허위뉴스를 차단하는 알고리즘 개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기술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짜뉴스 대책은 '미디어 보는 안목 키우기'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특강에서 “가짜뉴스를 몰아낼 수 있는 궁극적 대책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라고 강조하는 김지영 교수. ⓒ 이자영

그렇다면 김 교수가 생각하는 가짜뉴스 대책은 무엇일까. 그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법적 규제나 IT 기업들의 자정 노력 모두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가짜뉴스의 궁극적인 대책은 진짜뉴스를 확보하고 건강한 저널리즘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일반 이용자들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초등학교부터 미디어 리터러시를 필수과정으로 넣어서, 이들이 자라면서 스스로 가짜뉴스를 식별하고 감시할 수 있게 만들어야 건강한 저널리즘의 토양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가짜뉴스 식별하기’에만 치중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진짜뉴스와 가짜뉴스 사이의 비진실 뉴스도 구별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는 얘기다. 그가 말하는 비진실 뉴스는 의도적인 허위조작은 아니지만 진짜뉴스가 되지 못하는 ‘자격 미달 뉴스’다. 기사의 형식을 취했지만 광고나 마찬가지인 일방적 홍보기사, 취재원을 밝히지 않고 ‘알려졌다’ ‘전해졌다’ 등을 남발하는 미확인 정보, 보도자료를 사실 확인도 없이 그대로 베낀 기사, 기사 내용과 상관없는 선정적 제목,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반복 전송하는 ‘어뷰징’ 등이 그 예다.

그는 “기자들이 저널리즘의 교본과 언론윤리에 충실한 기사를 쓰는 것, 독자들은 진짜와 가짜, 비진실 뉴스를 구분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가장 확실한 가짜뉴스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편집 : 나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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