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사이버 폭력으로 위험수위 넘은 여학생 학교폭력

여학생 학교폭력이 SNS 등을 통한 사이버 폭력 형태로 교묘하게 이뤄지면서 피해학생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학교에서도 여학생들의 학교폭력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피해학생들의 자살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학교와 교육당국은 여학생 학교폭력에 젠더 차이를 간과한 채 대응해 실효성 있는 방지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잇따르는 ‘학교폭력’ 여학생 자살사건

지난달 2일 충북 제천에서 한 여고생이 개학을 하루 앞두고 4층 상가 옥상에서 투신해 숨졌다. 최근까지 경찰 조사 결과 숨진 여학생은 학교 선배와 친구들로부터 ‘집단 사이버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숨진 ㄱ양이 다른 친구를 괴롭히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같은 학교 학생들이 SNS 상에서 집단으로 ㄱ양을 협박하고 괴롭힌 것으로 조사됐다. ㄱ양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친구 ㄴ양이 주변 친구와 선배들에게 SNS 등을 통해 퍼뜨린 것이었다.

지난달 8일에는 부산에서 한 여중생이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고, 인천에서는 8월과 9월 잇달아 여중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달 1일에는 서울 은평구 한 초등학교 여학생이 자신이 다니던 학교 운동장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죽은 여학생은 6학년생으로 발견될 당시 죽음을 암시하는 메모가 함께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석 달 새 여학생 5명이 비슷한 이유로 잇따라 숨진 것이다.

▲ 최근 ‘여학생’ 학교폭력은 피해학생의 자살이라는 극단적 결과로 이어지고 있어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인천 여중생 자살’ 사건 가해자 처벌을 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었다. ⓒ 청와대

이 중 제천 여고생 사건은 ‘집단 사이버 괴롭힘’에 따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고 나머지 사건도 수사중이나 역시 학교폭력과 관련된 사건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달 12일 발생한 인천 여중생 투신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온라인 공간에 숨진 학생을 비난하는 글이 많아 이를 비관해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나머지 사건들도 가족 진술이나 숨진 학생의 생활과 주변관계 등을 추적해 본 결과 학교폭력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사이버 괴롭힘’ 등 여학생 학교폭력이 아주 은밀하고 교묘하고 집요하게 이뤄져 치명적인 결과를 빚고 있는 것이다.

▲ 올해 초,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유명한 모자 광고모델인 14살 에이미 에버렛이 사이버 폭력을 못 견뎌 자살했다. 에이미가 죽고 친구인 케이틀린까지 온라인으로 외모 비하, 욕설 등 사이버 폭력을 당하자 시민들이 ‘STOP BULLYING’ 운동을 벌였다. ⓒ <더 선> <데일리 메일>

여학생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여학생들 특유의 학교생활이나 교우관계 등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신체폭력이 주종을 이루는 남학생 학교폭력과 달리 여학생 학교폭력은 언어폭력 형태로 나타나는 사례가 많고, 그것이 최근 SNS 등을 통해 공격성이 극렬해져 피해학생들이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구 제일여자상업고등학교 박소영(39) 교사는 “SNS 확산과 스마트폰 사용으로 사이버 폭력이 매우 은밀해지고 있다”며 “상담을 통해 학교 폭력 여부를 점검하지만 피해학생이 2차 가해가 두려워 말을 못할 경우에는 파악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언어폭력’ ‘사이버폭력’ 증가, 여학생 피해 더 심각

▲ 교육부가 발표한 ‘2018 학교폭력 1차 실태조사’결과를 보면 사이버 괴롭힘(10.8%) 비율이 신체폭행(10.0%)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 교육부 ‘2018 학교폭력 1차 실태조사’

교육부가 발표한 ‘2018 학교폭력 1차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학교폭력 유형별 비율은 언어폭력(34.7%), 집단따돌림(17.2%), 스토킹(11.8%) 등의 순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사이버괴롭힘(10.8%) 비율이 신체폭행(10.0%)보다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학생 4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45.6%가 채팅이나 메신저에서 사이버폭력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전에는 주먹다짐 등 신체폭력이 주종을 이루던 학교폭력이 ‘언어폭력’, ‘사이버 괴롭힘’ 등으로 옮겨 가면서 한층 더 은밀하고 교묘해지고 있는 것이다.

▲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이뤄지는 사이버 학교폭력은 은밀하고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어 파악이 쉽지 않다. ⓒ KBS

충북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김은희 계장은 “학생들이 학교나 학원을 다니며 바쁘게 생활하기 때문에 직접 접촉보다는 SNS를 통한 소통이 주가 되면서 사이버폭력이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한 사이버 폭력은 오프라인 폭력과 달리 가해자가 모바일 메신저나 채팅 이메일 등을 통해 24시간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나 피해자를 괴롭힐 수 있어 그 피해가 훨씬 크고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약학과 곽혜선 교수팀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청소년 1천796명(남 820명, 여 976명, 평균나이 14.9세)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중독위험에 대해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 중독 위험 비율은 여학생이 23.9%로 남학생의 15.1%보다 훨씬 높았다. 그 원인으로 지목된 SNS 사용률의 경우 여학생이 41.2%로 남학생의 26.5%를 크게 상회했고, 메시징 앱 사용률도 여학생(23.6%)이 남학생(12.8%)의 2배에 육박했다.

▲ SNS 메시지나 사진 등을 통해 집단적으로 한 학생에게 모욕을 주는 ‘사이버 폭력’은 여학생들에게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 법제처

대구 ㄷ여고 ㄹ(18) 양은 “여학생들이 남학생에 비해 SNS 활동이 더 많다 보니 그를 통한 왕따시키기 등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SNS를 통해 친구들끼리 단체 메신저 방을 만드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애는 초대를 하지 않는다”며 “어떨 때는 초대해놓고 보든 말든 그 애 사진을 올리거나 욕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으로 이뤄지는 사이버폭력은 매우 은밀하고 노출이 잘 되지 않아 학교나 학부모가 피해사실을 알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상황을 악화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여고생 자살사건이 일어난 제천의 여자고등학교에서는 사건이 일어난 뒤에도 학교폭력이 일어난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숨진 학생을 대상으로 방학 중에 상담을 했지만 피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단적 선택’ 우려 높은 학교폭력 피해자들

▲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자살에 대한 생각과 자살 시도를 더 많이 한다. ⓒ 보건복지부

‘여학생 학교폭력’이 심각한 것은 피해학생들이 집요하고 교묘한 사이버 괴롭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청소년 건강행태온라인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자살 시도 비율이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2배 정도 높게 나타났다. 또 자살을 생각해본 학생 비율 역시 남학생보다 높게 나타났다. 청소년 폭력 예방재단이 실시한 ‘2017년 학교폭력실태조사’에서 학교폭력 피해자들 중 ‘자살 생각을 해봤다’는 대답이 42.3%, ‘자살 시도를 해봤다’는 응답자가 26.1%에 이르렀다.

▲ 학교폭력 피해를 겪은 학생 중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 청소년 폭력 예방재단

특히 우리나라 ‘여학생’ 자살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두번째로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학생 학교폭력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해 둘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한림대 자살과학생정신건강연구소가 조사한 'OECD 국가 10~19세 평균 자살률'을 보면 우리나라 여학생은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4.36명으로, 뉴질랜드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반면 남학생은 여학생보다 많은 5.15명이지만 18번째였다. 서울대 교육학과 김동일 교수는 “여학생들은 상대적으로 관계 지향적이기 때문에 주변 환경에 따라 정서적으로 취약해지기 쉽다”며 “내적 우울함이 있어도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주위에서 이를 포착하고 대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한국은 OECD 국가 중 여학생 평균 자살률이 두 번째로 높아 여학생 학교폭력 대책이 시급하다. ⓒ 한림대 자살과 학생 정신건강연구소

여학생 학교폭력 대응 더 세분화 전문화해야

(재)푸른나무 청예단 문용린 이사장은 ‘여학생 폭력 행동의 특징과 기제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연구’에서 ‘우리 사회는 남성과 여성의 폭력을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이 여성보다 폭력적이며, 이에 따라 여중생-여고생의 폭력은 이상행동이라는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문 이사장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남학생은 한 집단이 자기집단 밖 학생을 학교폭력 대상으로 가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학생은 한 집단 안에서 학교폭력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여학생 학교폭력은 대응책도 다르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매년 두 차례 실시하는 학교폭력실태 조사내용을 보면 학교폭력에 관한 교육부의 노력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교육부가 내놓은 학교폭력실태조사를 보면 매년 피해 응답률이 감소하고 있는데,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체감지수는 다르다. 특히 사이버 폭력 등 실태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각지대를 위한 별도 조사방법과 해결방안은 특별히 내놓은 것이 없다.

▲ 2014년 울산시교육청이 조사한 학교폭력 피해응답률은 전년대비 0.5% 포인트가 줄어 0.8%이지만 실제 피해학생 수는 42% 이상 증가한 242명이다. ⓒ 학교알리미

교육부는 이런 지적을 감안해 올 2학기 조사부터는 전수조사에서 학급별, 학년별 전체 학생의 3%인 10만 명 가량을 추출해 심층조사하는 표본조사로 바꿨다. 하지만 교육전문가들은 아직도 학교폭력실태조사에서 남녀별 학교폭력 실태와 피해자 조사가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영선 학생인권국장은 “기계적인 실태조사와 처리 절차의 문제가 같이 있다”며 “지금 조사는 물리적 폭력에 한정된 문항이 많고 언어폭력, 관계적 폭력에 대해선 잘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가해자 징벌 낙인이 될 수 있는 생활기록부 기재가 문제인데, 학생들은 친한 친구 관계나 사이버 폭력인 경우엔 학교폭력 처리절차가 너무 엄벌주의다 보니 2차피해가 두려워 공론화를 어려워한다”고 덧붙였다.

▲ 학교폭력은 증가하고 있으나 피해응답률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 교육부

학교마다 체계적인 학교폭력상담실을 운영하고, 자료상으로는 2018년 한 해 학교폭력 상담건수가 2만6047건으로 2016년보다 20.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실질적인 상담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재)푸른나무 청예단 상담/사업본부 최희영 센터장은 “상담도 중요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1차적 갈등이 있을 때 그것이 더 심각해지지 않도록 당사자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해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계회복이나 화해조정 등 프로그램과 상담전문가 확대로 2차가해를 막고, 학교폭력 주제로 뮤지컬을 제작하는 등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폭력사태를 방관하지 않고 비폭력으로 갈등을 해결하게 만드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편집 :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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