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이민호 기자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는 건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매년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 새로운 정책도 내놓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정부는 2분기 출산율이 0.97이라고 발표했다. 이 수치대로라면 올해 출산율은 0.96~0.99 정도가 될 전망이다. 인구증가율에서 ‘1+1=1’ 등식이 고착되고야 말 전망이다. 인구가 유지되려면 출산율이 2.1 이상 되어야 한다. 언론은 저출산의 이유를 분석하며 ‘재앙’이라 표현한다. 미래에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추세를 우려한다.

저출산은 ‘괜찮은’ 일자리 부족, 부동산 시장 교란, 결혼과 사랑의 인식 변화 등 다양한 문제가 뒤엉켜 발생하는 현상이라 해결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 출산이라는 행위가 너무 많은 포기를 불러온다. 비싼 선택인 탓이다. 여성들은 오랜 기간 준비해 커리어를 시작하고 고생하며 쌓은 경험을 출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출산과 육아는 곧 경력 단절을 의미한다.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이 활발해졌지만, 자기 경력을 유지하려는 여성에게는 이런 제도마저 불리하게 인식된다.

▲ 2017년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기는 모두 35만 8000명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40만 명 선이 무너졌다.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출산 비중이 높은 30대 초,중반 여성의 출산 비중이 가장 많이 줄었다. ⓒ JTBC 뉴스

출산이 지금까지 꾸려온 삶과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삶보다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포기할 수밖에. 남성과 여성이 공평하게 육아 부담을 나누는 문화도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부부 둘 중 하나가 직업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대개 여성의 몫이 된다.

취업시장에서도 사람들은 쉽게 포기한다. 자기가 꿈꾸는 일을 하겠다는 희망을 포기하는 일이 흔해졌다. 청년은 대기업, 공기업, 외국계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기를 쓰고 달려든다. 중소·중견기업이 경력의 시작이 되는 걸 두려워한다. “갑질에 시달리지 않을까? 회사 시스템은 제대로 갖춰져 있을까? 연봉은 얼마나 될까?” 이런 고민들을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는 피할 수 있다. 손꼽히는 대기업에 들어간 청년들도 불안을 피할 수 없다. ‘몇 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라는 딜레마에 시달린다. ‘결국 답은 공무원’, ‘퇴직금의 행선지는 치킨집’이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정부가 만들겠다는 수만 개 일자리가 지속가능한 직장이 아니라면 일자리 창출 예산은 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다. 청년을 구하는 기업들의 개별 노력도 절실하다. 더 이상 일을 위해 삶을 포기하는 청년은 찾기 힘들 것이다. 자신을 소모하면서 일을 이어가기보다 마음 편하고, 재능을 발산할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게 요즘 청년이다.

▲ 치솟는 물가와 집값, 그리고 취업난. 20~30대 젊은이들은 일찍 지쳤고 꿈, 열정, 연애 등 많은 것을 쉽게 포기했다. 하지만 비관하고 분노할 수만은 없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 힘을 내려는 청년들이 영정 사진 찍기를 시작했다. 삶의 마지막과 마주한 뒤 살아갈 힘을 얻으려는 것이다. ⓒ JTBC 뉴스

지금 사회는 인간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다 쏟게 만든다. 무언가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소모되고 말 것이다. 기본적 삶의 요건 중에 우리가 포기하는 것은 출산, 취업, 친구, 꿈, 여유 중 하나이거나 또 다른 무엇이다.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각기 소중한 무엇을 포기하도록 종용받는 사회에 산다.

어떻게 하면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을까? 우리가 철칙으로 여기는 기존의 가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매년 성장해야 한다는 성장지상주의가 대표적이다. 성장보다 유지, 이익보다 가치, 축적보다 나눔, 오늘과 내일의 조화를 추구하는 문화, 정책, 철학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그 무엇을 포기할 때, 역설적으로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편집 : 박경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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