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명진 스님과 김인국 신부 대담

“저는 승적이 박탈돼 아무 말이나 해도 됩니다.”

명진 스님의 신랄한 비판에 진행자인 양문석 아나운서가 괜찮겠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옥천 송건호 언론문화제의 일환으로 만난 명진(69) 스님과 김인국(56) 신부는 ‘평화의 길, 종교의 길, 언론의 길’을 주제로 한 대담에서 때로는 신랄한 비판으로, 때로는 웃기며 좌중을 사로잡았다. 이 대담은 KBS 청주총국의 ‘금요일에 만난 사람’으로 14일 오후 7시 50분부터 방영한다.

명진 스님은 조계종 적폐 청산을 위해 단식을 하고, 조계종의 촛불집회 불참을 비판하는 등 평소 사회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조계종은 2017년 4월 종단 질서를 어지럽히고 ‘승풍’(僧風)을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그의 승적을 박탈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인 김인국 신부는 4대강사업, 삼성 비자금 사건, 용산 참사, 쌍용차를 비롯한 해고노동자 농성장 등 한국사회의 정의롭지 못한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피해자들을 보듬는 일을 해왔다.

▲ KBS의 공개녹화는 옥천읍 삼금로의 지역문화공간 둠벙에서 진행됐다. 왼쪽부터 양문석 진행자, 명진 스님, 김인국 신부. ⓒ 옥천신문

“북한보다 더 위험한 미국의 핵도 폐기해야”

김인국 신부는 비핵화 과정을 예측해달라는 질문에 “김정은 위원장의 행동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이 앞서는 것이 정의에 맞다”고 답했다. 그는 “핵무기를 구축한 북한의 행동이 옳은 일이었는지는 논란거리가 될 수 있지만, 북핵은 미국의 압박에 대한 대응으로 북한이 긴 세월 가난을 감수하고 마련한 시스템”이라며 “행동을 먼저하고 말이 뒤따르는 것은 순리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의 선 비핵화 주문이 부당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명진 스님은 ‘왜 북한 핵만 위험하다고 보는가’라고 오히려 질문을 던지며 북한 핵보다 파괴력이 훨씬 큰 미국 핵도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민들이 굶어 죽는 나라에서 (미국 핵의) 위협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가진 핵을 없애라고 할 게 아니라, 미국이 솔선수범해서 먼저 핵을 없애는 게 더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북핵 폐기’라는 말보다 ‘한반도의 안전한 비핵화’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핵은 ‘거래독침물’ 같은 것입니다. 벌은 침을 쏘는 순간 죽습니다. 북한도 핵을 사용하는 순간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쓰는 거죠. 벌은 위협받을 때만 침을 쏘지 가만히 있는데 침을 쏘지 않습니다. 북핵도 마찬가집니다. 국가와 체제를 위협할 때 핵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지만, 가만히 내버려 두면 사용할 일이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미국의 모순과 위선을 지적했다. 김 신부는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갖기 전에도 평화협정, 국민 수교를 외면했다”며 “핵무기가 생긴 뒤에는 없애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두가 알지만 모른 체해왔던 미국의 이면을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명진 스님은 “북한 비핵화를 주장하는 미국이 동등한 입장에서 핵을 폐기하고 나아가 전 세계의 비핵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는 사회주의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북한 비핵화와 남북화해가 진전돼 찾아온 한반도의 평화는 어떤 이상향일지 질문을 받은 명진 스님은 평화는 개인의 무한한 자유의 의미가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타인에 피해를 주거나 공공에 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하늘로부터 받은 개인의 천부적인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와 규제가 모두 사라져야 진정한 평화가 온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런 세상으로 가기 전 분단으로부터 오는 억압이 너무 심합니다. 한국 사회를 철저하게 멍들이고 발전을 가로막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없어져야 합니다.”

같은 질문에 김 신부는 우리 국민에게 남북 평화의 체험이 없어 상상하기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분단 없는 평화가 자연스럽지만, 우리를 우리답지 못하게 하는 분단·분리·분열이라는 3중 구조의 결박이 풀리는 날 우리의 삶은 상상 그 이상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 김 신부는 정부가 잘하고 있을 때 ‘어디 되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뒷짐 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며 “한반도 평화정착 여부에 따라 나와 후손의 명운이 갈린다는 생각을 분명히 밝혀 선의를 모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 옥천신문

두 사람 모두 현재 정부의 남북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에 합격점을 줬다. 또 한반도 평화 정착을 반대하는 세력을 향한 쓴 소리도 함께 목청을 높였다. 명진 스님은 분단된 상태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해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와 언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지나가는 세월 동안 저질렀던 부정부패한 더러운 손으로 발목 잡으려면 고무장갑을 꼭 끼고 잡으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경유착’ 못지 않은 ‘정종유착’

다음 주제인 ‘종교의 길’은 최근 조계종 전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탄핵 사건에 관한 질문으로 열렸다. 최근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설정 스님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자진 사퇴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명진 스님은 “자본의 더럽고 추악한 면들이 절간까지 침투해 들어왔다”며 “(설정 스님의 비리를) 스님들은 거의 다 알았지만 침묵했으며 그게 더 나쁘다”고 비난했다.

“(조계종 문제는) 종교와 정치의 유착관계 때문이에요. 선거 때 되면 총무원장이 지역 선거 운동을 해줘요. 그러면 그 자들의 부정부패한 비리를 정치인들이 감싸고 돌면서 불교 문화재 보수비용, 템플스테이 집행 비용 같은 예산을 만들어 줘요. 정치인과 종교인의 유착관계를 실명으로 거론할 예정입니다. 유착관계가 끊어지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는 더 이상 달라질 수 없습니다.”

김 신부는 “국정농단, 기무사 쿠데타 음모, 양승태 사법농단에 ‘이게 국가냐’라는 질문을 받은 것처럼 (적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모든 종교가 ‘이게 종교냐’라는 질문을 받고 있다”며 “세간의 이런 질타는 종교의 혁신을 뒤로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교인들은 이를 기회로 여기고 쇄신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세상을 위로하고 기쁨을 주고 슬플 때 손을 잡아야 합니다. 현재 종교는 그런 역할을 못하고 있어요. 차라리 방탄소년단이 그 역할을 잘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사 내용과 몸짓에 많은 사람들이 위안받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얘기하잖아요.”

종교의 위기라는 진단이 내려진 시대에 두 종교 지도자는 ‘종교는 꼭 필요한가’라는 껄끄러운 질문을 받았다. 명진 스님은 종교가 필요 없는 시대가 됐다며 종교가 틀에서 벗어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간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게 뭔지 고민하는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고 봤다. 그는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여라’(살부살조: 殺佛殺祖) 한 부처의 가르침을 설명하며, “불교에 갇혀서 부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기독교에 갇혀서 예수를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들은 더 이상 종교를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예수, 부처의 가르침보다 세력을 넓히고 종단에서 권력을 잡아 이익을 떼어먹는 행태가 정리되지 않고서는 이 시대는 종교보다 방탄소년단이 더 위대한 종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 비자금 제대로 보도 못해 국정농단 초래

마지막 주제인 ‘언론의 길’에서는 중앙집권적인 한국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고 지역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뒀다. 최근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하락한 원인에 관해 명진 스님은 “삼성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한테 보고서를 올리는 게 대한민국 언론의 민낯”이라며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신부는 “2007년 삼성 비자금 사태 때 언론이 제 기능을 다했더라면 박근혜 국정농단과 이재용 구속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당시 삼성의 부패와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언론이 이를 일제히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언론인들은 돈이나 권력의 유혹을 받는다. 양문석 아나운서는 종교인으로서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에게 어떻게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물었다. 김 신부는 “인생은 길지 않다”며 “자유와 양심을 선택하고 진실의 편에 서면 굉장히 행복하다”고 답했다. 명진 스님은 삼성 부회장 이재용과의 일화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 책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의 제목은 이재용 사장이 질문한 걸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그때 제가 ‘할아버지는 이병철은 삼성을 창업했고, 아버지 이건희는 삼성을 국제적 기업으로 만들었으니 손자 이재용 당신은 삼성을 국민에게 존경받는 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어요. 이제 빈말이 됐지만, 다시 한 번 얘기하고 싶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린 귀한 사람도 죽을 때는 삼베 헝겊에 싸여 묻힙니다. 좀 더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남는 거죠.”

지역 언론은 중앙 감시하고 지역의 속살 조명해야

▲ 명진 스님은 “옥천 주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옥천)신문을 자식과 부모와 같이 생각하면서 구독하고 많이 봐야 한다”며 “경제에 문제가 없으면 돈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시민을 위한 신문을 만든다”고 말했다. ⓒ 옥천신문

“중앙 언론이 제대로 진실을 보도 하지 않을 때 시비를 가려주는 지역방송이 많았어요. 자기 사명을 다하면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인국 신부는 지역 방송이 제자리에서 묵묵히 방송을 만들지만 외면받는 현실을 이렇게 말하며 “지역에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에 카메라를 돌리면 얼마든지 친숙하고 사랑받는 귀한 방송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편집 :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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