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옥천 송건호 언론문화제

‘언론의 고장’ 옥천에서 7~8일, 이틀간 ‘청암 송건호 언론문화제’가 열렸다. 송건호 선생의 정론직필 언론 정신을 잇고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2011년 이후 끊겼던 언론문화제가 7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 한국 언론 상당수는 국민의 알 권리를 저버리고 제 잇속 챙기기에 바빴다. 기자들은 각종 편파, 왜곡, 거짓 보도를 일삼아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언론을 향한 불신이 팽배한 한국에서 언론의 바른길이 열릴 수 있을까? <단비뉴스> 지역농촌취재팀이 충북 옥천을 찾아갔다.

독재정권 시절, 정도를 걸은 진정한 언론인

오후 2시부터 옥천문화원 문화교실에서 김삼웅(75) 전 독립기념관장의 ‘송건호 선생 삶과 언론사상’ 특강이 열렸다. 그는 양심에 따라 정도를 걸었던 청암 송건호 선생의 삶과 정신을 이야기했다.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송건호 선생 삶의 자취와 정론직필 정신을 강연하고 있다. ⓒ 고하늘

송건호 선생은 휴전협정을 맺은 1953년에 스물여섯 나이로 언론사에 들어가, 한 언론사에 머물지 않고 <조선> <동아> <한국> 등으로 옮겨 다녔다. 신문사 핵심 간부로 있었을 때도 사주보다는 일선 기자들과 운명을 같이했다. 1975년 <동아> 광고사태 때는 독재정권의 압박으로 언론인 백 몇 십 명이 쫓겨날 때, 기자들을 복직시키지 않으면 자신도 남아있을 수 없다며 편집국장직을 사임했다. 학생과 노동자의 대변인을 자처했고, 해직된 뒤에는 20년간 사학자로서 근현대사 연구에 몰입했다. 1988년에는 <한겨레신문> 창간 주역들에 의해 대표로 추대됐다.

“어떤 면에서 송건호 선생은 불운한 시대의 언론인입니다. 전쟁 직후 이승만 독재정치, 4.19 1년 만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 유신 쿠데타, 전두환 포악 정치… 올곧은 언론인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극악한 시대의 언론인 중에서도 정말 거의 유일하게 타협하지 않은 언론인 중 한 명이죠. 선생은 말했습니다. 자신은 투사도 아니고 지사도 아닌데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다. 근데 시대가 비상식적이고 몰상식했기 때문에 상식적인 자신이, 시대와 타협하지 않는 언론인이 되었다는 겁니다.”

송건호 선생은 생전에 언론인을 ‘거울’에 비유한 바 있다. 언론인과 역사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무언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를 비춰야 한다. 오목 렌즈나 볼록 렌즈, 또는 일그러진 렌즈는 안 된다. 언론 역시 제대로 비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언론이 아닌 것과 다름없다.

'헬조선'에서 벌어진 '안티조선운동'

청암 송건호 언론문화제는 2000년 8월 15일 옥천 주민 33명이 '조선일보 바로 보기 옥천시민모임'을 꾸려 '안티조선운동'을 벌이며 시작됐다. 언론문화제 조직위원장을 맡은 오한흥(60) 옥천신문 대표는 "<조선일보>가 문제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그 힘 센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이냐 하는 것은 논쟁이 아닌 실천의 영역이었다"며 "옥천에서 진행한 안티조선운동, 즉 조선일보 절독 운동은 치열한 실천 운동이었다"고 말했다.

▲ <단비뉴스> 취재진이 오한흥 <옥천신문> 대표를 인터뷰하고 있다. ⓒ 오수진

"우리나라 언론의 건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는 여기 문화제에 양질의 언론인이 얼마나 많이 모이냐 하는 것과 맞닿아 있어요. 시골 빨래터에도 방송인이 있기 마련이에요. 말 잘하는 할머니가 넓은 의미로 마을의 언론인이죠. 만약 할머니가 자꾸 왜곡 보도를 하면 마을은 망가져요. 할머니가 그런 의도가 있든 없든 자꾸 누구를 흉보고 이상하게 왜곡한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마을이 망가지기 마련이죠. 작은 마을도 그런데 한 지역이나 전국에 영향을 미치는 언론사와 언론인은 어떻겠어요?"

오 대표는 "언론인은 끊임없는 성찰과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론인끼리 모여서 성찰하고 언론을 고민하고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대한민국 언론인이 최소 1년에 한 번은 옥천에 모이는, 그런 언론인의 축제가 열리는 고장으로 옥천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쉽고, 재미있고, 편한 잔치가 돼야”

문화제가 진행되는 야외공연장 주변으로는 송건호 선생과 언론개혁을 주제로 한 서예 깃발과 걸개그림이 바람에 휘날렸고, 옥천문화원 1층에는 청암 송건호 선생 미공개 사진과 '한반도 평화'와 '청년'을 주제로 한 시사만화들이 전시됐다. 전국 각지에서 발행되는 <옥천신문>을 비롯한 지역신문들의 보도사진도 전시됐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은 야외공연장에서 또래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고, 언론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시사만화전과 지역신문전 등을 관람했다.

▲ 또렷이 보이는 ‘정론직필’ 서예 깃발. 그 뒤에는 ‘참 언론인 청암 송건호’ 깃발이 걸려 있다. ⓒ 조현아
▲ 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시사만화전을 관람하고 있다. ⓒ 조현아

옥천 소식을 전하는 월간지 <옥이네>의 임유진(26) 기자는 "대학 시절부터 언론문화제나 옥천이 언론의 고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다 취재도 하려고 참여했다"라며 "더 많은 사람이 언론문화제에 참가하지 못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고 이 축제를 확장하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늘이 선홍색으로 물들며 저녁 어스름이 내리자 국수를 삶고 부침개를 부치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문화제를 찾은 이들은 발걸음을 돌려 잔치국수를 한 그릇씩 받아들고 자리에 앉아 뜨끈한 국물과 같이 나온 시원한 식혜를 들이켰다. 옥천 언론문화제는 반가운 얼굴을 오랜만에 보는 만남의 장이자 처음 보는 이들도 마음속에 쌓아뒀던 아쉬움 등을 털어놓으며 가까워지는 대화의 장이다. 막걸리를 한두 잔 마신 이들의 목소리로 조용했던 문화제도 시끌벅적 활기를 띠었다.

▲ 야외 식사 부스에서 자원봉사자가 멸치를 우린 뜨끈한 물에 국수를 토렴하고 있다. ⓒ 고하늘
▲ 노을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언론 문화제의 분위기를 띄우는 풍선과 걸개그림이 선선한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 조현아

행사에 참여한 양수철 전 <뉴스서천> 대표는 언론인들이 이런 좋은 자리에 와서 하루쯤 자신을 뒤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언론인이 실은 ‘문화’ 자체를 접하고 즐길 여유가 없어요. 언론인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주로 보고 접하죠. 느리게 가는 것을 고민할 틈이 없습니다. 언론문화제를 통해 언론인도 잠시 멈춰서 남들보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으면 해요. 쉼 없이 취재하고 쓰려던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성찰할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그게 언론인에게 필요한 ‘문화’일 거예요.”

송건호 정신, 다시 정도 언론으로

▲ 밤 행사는 어린이 무용단 ‘하스’의 축하 공연으로 시작됐다. ⓒ 고하늘

어린이 무용단 '하스'의 기념공연을 시작으로 진행된 밤 행사에는 '신발 멀리 차기'를 하며 노는 아이들부터 언론의 미래를 고민하는 언론인과 언론인지망생, 마실 나온 동네 어른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 야외 공연장에서 ‘옥천이 함께 만드는 언론개혁 토크콘서트’가 진행되고 있다. ⓒ 조현아

토크콘서트는 <옥천신문>의 정지환 객원기자와 정순영 전 기자의 사회로 진행됐고,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과 김환균 현 언론노조위원장이 패널로 참석했다. 신학림 위원장은 “이길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싸워야 하는 경우가 있고 질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싸우는 상황이 있다“며 “언론인은 부당한 일이 닥쳤을 때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지더라도 모든 걸 걸고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환균 위원장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송건호 선생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비판 정신을 잃어버리는 순간 기자가 아니고 언론인으로서 죽은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 언론노조는 싸움할 때마다 졌어요. 촛불 시민들이 외쳤던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은 곧 ‘너희들이 언론인이냐’라는 질문으로 들렸습니다. 언론은 다시 시민들에게 채찍질을 받으며 비판 정신을 되새겨야죠. 아주 작은 승리라도 일깨우고 조금씩 만들어가야 합니다.”

정순영 전 <옥천신문> 기자는 자신도 2007년 입사할 때까지 송건호 선생님이 옥천에서 나고 자라신 걸 몰랐다고 ‘고백’했다.

“옥천 주민들이 바른 언론인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분이 바로 송건호 선생님이십니다. <옥천신문>이 2010년 ‘송건호 언론상’을 받고 우리가 틀리게 신문을 만들고 있지 않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타계한 지 1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후배 기자들에게 가장 닮고 싶은 언론인으로 꼽히는 청암 송건호 선생. 그가 걸었던 언론인의 바른길과 정론직필 정신은 그의 출생지 옥천에서 열리는 ‘송건호 언론문화제’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다.


편집 : 이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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