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제천솔뫼학교 ‘어르신 학생’ 장재희

스승의 날을 며칠 앞두었던 지난 5월 11일 충북 제천시 용두천로의 제천솔뫼학교 교실. 곱슬곱슬한 흰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장재희(91·여) 씨가 연필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 내려갔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우리 식사 자리를 자주 합시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나는 너무 행복합니다.”

도와주겠다는 짝꿍의 제의도 사양하고 혼자 편지봉투까지 다 쓴 장 할머니의 얼굴에는 자부심 어린 미소가 번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간단한 한글을 읽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장 할머니가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이 학교의 ‘문해교실’에 열심히 다녔기 때문이다. 솔뫼학교는 학령기에 공부할 기회를 놓친 어르신에게 한글 등을 배울 수 있게 해주는 민간 교육기관이다.

‘여자가 배워서 뭐하냐’며 일만 시킨 부모

▲ 제천솔뫼학교 문해교실에서 <단비뉴스>와 만난 장재희 할머니가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던 어린 시절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 김서윤

1927년 충북 단양군에서 여러 형제자매 중 맏이로 태어난 장 할머니는 일곱 살부터 밥을 지었다고 한다. 당시 수준에서는 특별히 가난한 집이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맏딸을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다. “여자가 배워서 뭐하냐”고 꾸짖으면서 말이다. 어머니는 온종일 일을 시켰다. 친구들이 학교에 갈 때 그는 동생들을 돌보고, 농사일을 돕고, 새참을 지어 날랐다. 어머니가 어찌나 모질게 일을 시켰는지, 동네 사람들이 ‘의붓어머니’라고 쑤군거릴 정도였다.

열일곱이 됐을 무렵 장 할머니는 고된 일을 견디다 못해 직장 다니는 친구가 살던 서울 청량리로 가출했다. 하지만 며칠 못 가고 아버지 손에 붙잡혀 돌아왔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할머니는 ‘시집갈래, 잡혀갈래?’의 선택 앞에서 쫓기듯 결혼을 했다. 멀쩡한 처녀들을 ‘정신대’ 등의 이름으로 일본 순사들이 붙잡아 전선으로 보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시집살이도 지옥이었다.

“친정엄마 겪으며 시집살이 다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시어머니는 더 모질더라.”

할머니는 집안일, 밭일 같은 고된 노동은 물론 시어머니의 냉대와 폭언도 견뎌야 했다. 게다가 술장사를 하던 남편은 바람둥이였고, 밖에서 데려온 여자를 위해 밥을 지으라고 아내에게 악을 쓸 만큼 무도한 인간이었다.

“애 배고 있을 땐데, 데려온 여자 덮어준다고 내 이불을 뺏어갔어. 시누이 옆에서 덜덜 떨면서 자고 그랬지.”

시어머니와 남편의 학대 속에 ‘못 배운 한’은 쌓이고

자식은 다섯을 낳았지만 첫째는 백 일만에 병으로 잃었고, 둘째는 교통사고로 떠나보냈다. 남편의 폭행으로 배 안에서 충격을 받은 막내아들은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장애를 얻었다. 다행히 시아버지는 따뜻한 분이셨지만 시아버지 때문에 평생 잊을 수 없는 눈물을 쏟기도 했다.

“쌀장사를 하시던 시아버지가 하루는 나를 불러서 장부를 작성하라고 하시는데, 글을 못 읽는 걸 들킬까 봐 무서워 그 자리에서 눈물만 쏟아냈지. 못 배운 게 너무 부끄러웠거든.”

▲ 못 배운 것이 너무 부끄러웠지만 사는 게 힘들어 팔순이 훌쩍 넘었을 때까지 배울 기회를 찾지 못했다고 회고하는 장재희 할머니. ⓒ 김서윤

그 무렵 학교에 다니면 안 되겠냐고 시어머니에게 간청했더니 “친정에서 못 배운 걸 왜 시집와서 가르쳐 달라 하느냐”며 매몰차게 꾸짖었다. 시집살이 중 누군가에게 대든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 자신이 참으면 모든 게 해결되니까 그냥 꾹 누르고 살았다고 한다.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장 할머니는 몸과 마음에 병이 든 자식들을 건사하며 먹고 살기 바빠 다른 생각을 못 했다. ‘못 배운 한’이 평생 마음 바닥을 맴돌았다.

나이 구십에 얻은 초등학교 졸업장

그러다 5년 전 ‘찾아가는 문해교육’의 일환으로 송학면을 찾은 제천솔뫼학교 자원봉사 교사들을 만났다. 교사들의 권유로 제천솔뫼학교 송학지부를 다니면서 장 할머니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교실에 앉아 한글과 영어 알파벳을 배우고, 학교 동기들과 소풍도 가고 체육대회도 했다. 지난 2월 28일에는 초등학력을 인정받고 졸업식에도 참석했다.

▲ 장재희 할머니와 어르신 학생들이 솔뫼학교 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진지하게 공부를 하고 있다. ⓒ 박선영

장 할머니가 그중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일은 한글을 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은행이나 병원에서 문서를 읽고 간단히 신상정보를 적는, 보통사람에겐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이 할머니에게는 그동안 ‘식은땀을 흘리며 어딘가에 숨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은행 갔을 때, 부조할 때 이름 석 자 쓸 수 있게 된 게 제일 기뻐.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인 것 같아.”

솔뫼학교 노병윤(52) 교감은 장 할머니의 출석률과 수업이해도가 매우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남달리 긍정적인 마음가짐, 높은 학구열이 바탕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노 교감은 “소풍 갔을 때 선생님들에게 줄 떡을 싸 오셨기에 ‘이런 것 안 주셔도 된다’고 했더니 ‘나라에서 아들이 장애인이라 돈을 주고 나 늙었다고 돈을 줘서 나 부자예요. 선생님’ 하시더라”고 회고했다. 김종천(59) 교장은 “장 할머니는 학생 중 가장 나이가 많지만 지난 4월 함께 다녀온 제주도 여행에서 남들에게 피해 주기 싫어 매번 앞장서서 걸을 정도로 정정하시다”고 말했다.

▲ 스승의 날을 앞두고 장재희 할머니가 선생님에게 쓴 편지. ⓒ 박선영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 이웃과 나누고파

눈물과 한숨이 켜켜이 쌓인 인생을 살았지만, ‘학교 다니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눈망울은 소녀처럼 맑았다.

“학교에 걸어올 수만 있으면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고 싶어. 내 주변에 나 같은 노인이 많은데, 여기 나오는 걸 부끄러워해. 데려와서 같이 공부하고 싶어. 열심히 공부해서 나 같이 늦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쳐주는 게 꿈이야.”


편집 : 이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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