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토끼와 거북의 현대적 우화

▲ 박경난 PD

나는 68세 박빠름이다. 누구보다 최신유행에 민감하다. 노인정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다. 요즘은 유튜브가 대유행이다. 어느 영상을 봤다느니 요즘은 이런 신조어가 있다느니, 다들 신문물에 푹 빠졌다. 처음에는 손주들 만화영화 보여주려고 유튜브를 찾았다가 되레 내가 빠져들었다. 평소 말주변이 없어 대화에 잘 끼지 못했던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많이 유튜브 영상을 섭렵했다. 사실 그전에도 유행이라는 옷과 신발을 사고 음악도 들으며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꼭 성공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왜냐하면 옆집 할배 김거북은 유튜브가 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거북은 노인정 인기투표에서 매년 1위였다. 이름처럼 느릿느릿 하하허허 실없게 웃고나 다니는 양반인데, 유행에는 통 관심이 없다. 그런데 어느 대화에도 잘 끼고, 무슨 말만 하면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는다. 도대체 어떤 제비 같은 언변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김거북의 시대도 끝이다. 이번 유행은 유튜브를 보지 않고는 도저히 대화에 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인싸’ 끼리만 통하는 말을 나만큼 빠르게 습득한 사람도 없다. 사람들이 모르는 신조어를 가르쳐줄 때면 마음속으로 뿌듯함이 차올랐다. 마침 김거북이 여행으로 자리를 비운 2주 사이 나는 하루 10시간을 유튜브에 매진했다. 어떻게 그렇게 내가 보고 싶은 영상이 끊임없이 나오는지, 신통방통한 녀석 때문에 노인정 가는 걸 까먹기도 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 누구보다 빠른 다리를 가졌지만 자만했던 토끼와 느리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갔던 거북이. 승자는 거북이었다. ⓒ Wikipedia

그렇게 영상을 소비하며 우월감에 빠져있을 때 김거북이 돌아왔다. 그는 유튜브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곁눈질로 그를 보며 속으로 고소했다. 나는 아량을 베풀 듯 말을 던졌다. “거, 김씨는 어딜 갔다 왔길래 그렇게 살이 탔어? 복세편살 하지…. 롬곡이 난다.” 그는 내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저기 저, 라오스에 다녀왔어.” “라오스?” 다른 사람들이 궁금한 듯 물었다. “젊은 애들이 배낭여행으로 많이 간다던데. 궁금해서 나도 한번 다녀왔지. 나이가 있어서 힘들긴 했는데, 풍경이 아주 좋더라고.” 사람들은 곧 김거북의 여행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거! 요즘은 유튜브로 보면 세계 유명한 관광지 다 볼 수 있는데 뭐가 부러워!” 나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여기에 라오스를 검색하니까 얼마나 영상이 많이 뜨냐!” 나는 스크롤을 쭉 내렸다. 그때, “어라? 이거 김거북 아녀?” 누군가 한 영상을 가리켰다.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씨 유튜브도 할 줄 알어? 영상에 등장하다니 대단하구먼! 완전 TV 스타잖아.” “유튜브가 뭐여? 그러고 보니 여행할 때 젊은 애들이 뭐 카메라 들고 나 좀 찍겠다느니 뭐 어쩌니 했는데, 그건가 보네.”

영상을 눌러보니 김씨는 완전 스타가 돼 있었다. ‘할아버지 넘 멋지다’ ‘우와 그 나이에 라오스 배낭여행이라니 대단!’ ‘나도 나이 들어서 배낭여행 가고 싶다~’ 심지어 언론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단비뉴스> 기자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인터뷰를 좀 하고 싶습니다. 연락주세요.’ ‘꽃보다 노년 프로그램 PD입니다. 선생님을 섭외하고 싶습니다. 연락주세요.’

허탈해졌다. 나는 그가 없는 2주 동안 그렇게 열심히 유튜브를 보면서 공부했는데, 그는 어느새 유튜브 스타가 돼 있었다. 유튜브가 뭔지도 모른 채 느긋하게 여행이나 다니던 김거북이 말이다. 이번에도 졌다…. 하지만 유행은 또 온다. 얼른 나도 유튜브 영상 만들기를 배워야겠다. 그런데 무슨 영상을 찍지? 요즘 유행하는 영상은 뭔지 찾아봐야겠다.


편집 : 반수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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