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고하늘 PD

대학에 다니던 2012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여행자취업)를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고 1년 동안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학이면 시간제 일을 3개씩 하기도 했다. 한창 친구들과 놀고 싶고, 꾸미고 싶은 나이였지만 꾹 참았다. 5000원씩 주는 시급을 모아 비행기값과 숙박비 등의 경비 목표액을 마련하기까지, 내 생활은 ‘내핍’과 ‘인내’ 그 자체였다. 2013년 드디어 호주에 갔을 때, 내 신분은 여전히 ‘알바생’이었지만 시급은 1만7000원이었다. 나는 먹고 싶은 거 먹어가며 1년간 돈을 모아 귀국 전에 호주, 뉴질랜드를 여행하고 경유지인 홍콩까지 관광할 수 있었다.

시급 차이가 낳은 ‘삶의 질’ 격차

돌이켜보면 2012년의 나와 2013년의 나는 너무나 달랐다. 시급 5000원짜리인 나는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사고 싶은 것도 외면하며 가난하고 메마른 삶을 살았다. 그러나 1만7000원의 시급을 받던 나는 의식주에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도 여행을 다니며 높아진 삶의 질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과 호주에서 나는 비슷한 시간제 일을 했고, 목표한 저축액은 오히려 호주에서가 더 많았지만 훌쩍 높아진 시급이 내 삶을 윤기 있고 희망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최저임금인상 정책에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의 공격이 거세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대선 공약은 이미 달성이 어려워졌을 만큼 ‘속도조절’도 했지만, 이들의 공세는 거칠게 이어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 망할 지경이고, 인건비 부담으로 채용을 하지 않아 일자리가 줄고 있다고 법석을 떤다. 최근의 경제부진과 일자리난이 모두 최저임금 때문인 것처럼 몰아붙인다. 어떤 경제신문은 50대 여성이 최저임금인상 때문에 해고돼 자살했다는 ‘가짜뉴스’까지 실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망신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나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을 정말 어렵게 만드는, 더 핵심적인 변수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예를 들면 임대료다. 올해 초 한 방송에 나온 중국집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놀란 일이 있다. 짜장면 2000원, 짬뽕 3000원 등의 저렴한 가격에 국내산 등심과 신선한 채소 등을 아낌없이 써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집 사장은 인터뷰에서 “높은 품질을 유지하며 저렴한 가격을 고집할 수 있는 비결은 내가 건물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들처럼 달마다 200만원씩 내는 임대료가 없으니 싼값에 영양가 있는 짜장면을 팔아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얘기였다.

최저임금인상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에게 분명 부담은 되겠지만 정부에서 이미 다양한 지원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전체 자영업자의 약 70%를 차지하는 종업원 없는 가게, 즉 본인과 가족들만 일하는 점포는 최저임금인상에 따른 부담은 없고 내수 활성화에 따른 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열려 있다. 반면 비용 측면에서 훨씬 부담이 큰 임대료는 모든 자영업자에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근심거리다. 그런데도 건물주들이 마음대로 임대료를 인상하는 문제에 대해, 경제를 그리도 걱정하는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은 별로 떠들지 않는다.

▲ 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재벌 갑질', '상가임대료'다. 있는 사람이 더 부유해지고,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없는 사람들에게 먹고 살길을 마련해주자는 것이다. ⓒ flickr

최저임금 인상엔 분명한 명분이 있다. 당장 기본적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에게 안정적인 일상을 보장하고,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수백만 명의 구매력을 높여 주어 내수시장 활성화를 이끈다. 이는 ‘수요부진’으로 활력을 잃고 있는 우리 경제의 선순환을 자극해 기업 투자 증가와 일자리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도록 대기업의 이윤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으로 더 흘러가도록 하는 정책(공정경제), 창업을 활성화하는 정책(혁신성장) 등을 가속화하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에 주어진 과제다.

최저임금만 안올리면 자영업자 사정 나아질까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하는 자영업자들도 알바생 시급이 올라 인건비 월 몇 만원 더 나가는 것보다 툭하면 임대료가 올라 월 몇 십만 원, 심지어 몇 백만 원의 부담이 늘어나는 게 훨씬 심각한 문제임을 인정한다. 부동산투기가 여전하고,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갓물주’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는 현실에서 최저임금은 그저 분풀이를 대신하는 동네북이 된 인상이다. 반문해 보자. 최저임금만 안올리면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의 사정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는지.

정치권과 언론이 정말 해야 할 일은 국회에서 표류 중인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의 개정안을 빨리 처리하고 보유세 강화 등 투기억제책이 현실화하도록 입법과 감시활동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가맹비와 신용카드 수수료 등이 ‘착취적 수준’을 벗어나도록 이끄는 일도 중요하다. 2000원짜리 짜장면을 파는 가게 얘기가 더 이상 ‘놀라운 뉴스’가 되지 않는 사회, 그 길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편집: 고하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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