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계급배신’에 관한 고찰

▲ 조승진 기자

진화심리학은 사람의 삶을 선택의 연속된 과정으로 본다. 선택 영역은 다양하지만 세 가지가 핵심이다. 경제적 이익 영역, 사회집단 차별 영역, 그리고 번식 전략 영역이 그것이다. 보수는 경제적 자유주의, 차별 묵인, 성적 엄숙주의를 대변한다. 진보는 자원 재분배, 차별 철폐, 성적 자유주의를 대변한다.

사람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보와 보수 중 한 노선을 선택한다. 세 쟁점에서 진보·보수는 일관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일관된 태도는 오히려 예외적이다. 경제적 이익 영역에서 진보적이라고 그 사람이 사회집단 차별 영역에서도 진보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세 쟁점 모두 진화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은 각 영역에서 어떤 전략을 택할지 신중하게 고려한다. 진화심리학의 실험 결과다.

▲ 진화심리학은 사람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보와 보수 중 한 노선을 선택한다고 주장한다. ⓒ google

이성은 감정의 노예다. 이 때문에 사람은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선택은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때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세 가지 쟁점에서 유·불리를 따진다. 세 가지 쟁점에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합을 구성하기 위해서다.

‘가난한 보수’와 ‘엘리트 진보’는 본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면밀한 선택의 결과다. 이러한 선택은 이들에게 이득이라 여겨지지 않기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무엇 때문에 이들의 마음은 보수와 진보로 나뉘었을까?

보수와 진보가 내세우는 슬로건이 단서가 될 수 있다. 각 집단이 외치는 대표 구호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보수는 안보·안정을 내세우며 외국인(특히 외국인 노동자) 차별을 정당화한다. 반면 진보는 개방적 태도로 인권을 내세우며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보수를 선택한다. 전쟁과 같은 위험 상황이 발생할 때 경제적인 약자는 강자보다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전쟁은 경제적 약자에게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이들은 건설 현장이나 공장의 3D업종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마주하며 일한다. 때로는 임금경쟁에 밀리는 일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경제적 강자는 외국인 노동자와 밥그릇을 두고 싸울 일이 없다. 총을 들고 싸우는 일이든 밥그릇을 걸고 싸우는 일이든 경제적 약자에게는 생명이 걸린 일이다. 보수가 내세우는 안보관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회관에 이들의 마음은 움직일 수밖에 없다.

▲ 마음을 자극하는 정당별 대표 정책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나뉘게 된다. ⓒ 조승진

경제적 강자는 진보당이 대변하는 차별 철폐를 지지한다. 강남좌파로도 불리는 엘리트 진보는 사회에서 살아남기에 유리한 경제권과 사회적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차별적인 요소들이 사라질수록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증가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은 종교적 선택의 자유, 성적 결정권의 자유에 이들이 동의하는 이유다. 경제적 약자는 진보의 이러한 주장에 쉽게 동감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평등함을 이유로 성적 자유가 허용된다면 경제적·사회적 약자는 새로운 경쟁상대와 대결해야 한다. 이런 경쟁 구조에서 경제적·사회적 약자는 여전히 약자일 뿐이다.

상식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진보를 지지하고 부자들은 보수를 지지할 것처럼 보인다. 진보가 내세우는 주장은 궁극적으로 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것이고, 보수는 경제적 강자들이 가진 기득권을 지켜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이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굴절된다. 사람들은 적어도 세 가지 영역에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지를 조합한다. 가난한 보수와 엘리트 진보는 이렇게 탄생한다.


편집 : 조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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