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깨소금’ 연출하는 안동MBC 서현 PD

“다문화를 바라보는 미디어 프레임 자체가 이주여성이 겪는 부당한 대우나 차별을 다뤄서 한국인들이 다문화인에게 측은한 마음 혹은 시선을 갖게 하는 게 대부분이었죠. 미디어가 시청자에게 끼치는 영향이 큰데 자꾸 이런 식으로 노출되면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문화인을 안타깝게 여기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을 체화할 수 있는 거죠.”

경북의 안동문화방송(MBC)에는 다문화 부부 혹은 외국인과 그 친구가 나와서 퀴즈를 푸는 예능프로그램 <깨소금>이 있다. 지난 1월 5주년을 맞은 <깨소금>은 한 회 당 제작비 100만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시작했지만, 시청자의 공감을 얻으며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PD연합회가 주는 ‘이달의 PD상’, 한국마케팅협회가 선정하는 ‘대한민국 브랜드 대상’, 국민대통합위원회의 ‘국민통합 우수문화콘텐츠’ 등 표창도 많이 받았다. 첫 회부터 연출을 맡아온 서현(39) 피디(PD)를 지난 4월 13일 안동MBC <깨소금> 스튜디오에서 만나고, 지난 25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 서현 PD가 안동MBC 스튜디오에서 <단비뉴스>와 만나 <깨소금>의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 이연주

‘이주민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네’ 시청자 공감

서 PD는 기존 미디어가 다문화에 접근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 관점에서 관련 동향을 딱딱하게 전달하거나 연민의 시선 등 한쪽으로만 다문화를 조명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다문화 이주민이나 그 가족에 관한 오해와 차별을 해소해야 할 방송이 앞장서 이를 부추기기도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그는 말했다.

실제로 지난 1월 한국방송(KBS)1 <아침마당>에 출연한 모델 한현민은 ‘외모가 다르지만 한국인인 이유를 대라’는 질문에 “영어는 할 줄 모르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순댓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를 둔 한씨는 엄연히 이 땅에서 나고 자란 대한민국 국적자다.

<깨소금>의 접근법은 이런 방송들과 다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다문화 이주민은 퀴즈를 풀면서 진행자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출신 국가의 문화와 관습을 소개한다. 또 답을 틀린 뒤 가족끼리 아웅다웅 하는 모습 등 진솔한 면모를 드러낸다. 시청자들은 이를 보며 그들이 이방인이 아닌, 동시대를 사는 우리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임을 느낀다. 서 PD는 “다문화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하루 이틀 접하다 보면 다문화를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며 “이들이 겪는 삶의 문제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 간의 문제’라고 받아들이게 된다”고 덧붙였다.

“안동을 포함해서 경상도 지역 출연자가 많은데, 이쪽이 보수적이다 보니 출연자인 남편이 자기 아내나 가족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일이 많아요. 처음 나올 때는 굉장히 비협조적이거나 말을 잘 안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마음을 많이 여는 것 같아요. 쭈뼛쭈뼛하셨던 분들도 프로그램이 끝날 때가 되면 많이 풀어져서 ‘녹화시간 내내 많이 웃고 즐기고 간다’고 하시죠.”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2015년 외국인주민 현황>에 따르면 외국인근로자·유학생·외국국적동포·결혼이주여성·귀화인·불법체류자 등을 포함한 다문화 인구는 2008년 89만1341명에서 2015년 174만1919명으로 늘어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3.4%에 이렀다. 2004년 시행한 외국인고용허가제와 2006년 도입한 다문화가족 사회통합지원대책의 영향으로 다문화 인구가 급증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처럼 다문화 인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단일민족’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직 강한 한국에서 이들은 여전히 ‘다른 나라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일쑤다. 외모가 다르고 우리말을 잘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다문화인들을 차별하거나, 이주민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혐오하고 배제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러브레터’ 읽다 출연자·제작진 함께 눈물도

“아버지가 필리핀 여성과 재혼해서, 딸과 새어머니 나이가 열다섯 살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는 가족이 있었어요. 딸은 이 프로그램에 어머니랑 나오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거예요. 아버지의 상황이나 가족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다 공개해야 하니까요. 딸이 둘인데 같이 출연한 둘째가 대학생이었어요. 그런데도 ‘어머니와 가까워지는 계기로 삼고 좋은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나왔더라고요. 어머니가 방송 내내 다 큰 딸을 ‘아가야, 아가야’하고 부르던 게 아직도 기억나네요.”

서 PD에 따르면 출연자들은 프로그램에 나온 것이 가족 간에, 친구 사이에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돼 고맙다는 반응을 많이 보인다. ‘다문화인을 위해 이런 장을 깔아주는 곳이 없다’ ‘처음엔 나오기 꺼려졌는데 막상 나와 보니 너무 재밌다’ 등의 소감을 말한다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러브레터’ 코너를 찍다 보면 낭독 중에 출연자는 물론 윤일돈씨 등 진행자와 부조정실에서 지켜보던 스태프들도 함께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고. 서 PD는 “그런 의외의 감동적인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 경북 안동대학교에 다니는 남혜영(오른쪽에서 두번째)씨와 중국에서 유학 온 린샨(왼쪽에서 두번째)씨가 한팀으로 출연한 지난 2017년 7월 9일의 <깨소금> 방송. 맨 왼쪽과 맨 오른쪽은 진행자인 윤일돈, 김다솜씨. ⓒ 안동MBC

학교 적응에 어려움 겪는 아이들 문제가 가장 큰 고통

“한국으로 이주해 온 분들은 자신의 한국어가 서툴고 한국 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탓에 아이들까지 어려움을 겪는 걸 가장 가슴 아파해요. 다른 집 부모처럼 아이들에게 더 잘 알려주고 가르쳐줄 수 없으니까요.”

서 PD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만난 다문화인들의 공통적인 어려움은 자녀들의 적응 문제였다고 전했다. 외모가 달라 자녀들이 또래집단에서 느끼는 이질감, 맞벌이를 하면서 육아에 최선을 다하기 어려운 현실 등이 이들을 몹시 힘겹게 만들고 있다고. 서 PD는 “법과 제도를 현실적으로 개선해서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씀들을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는 가끔 외국인을 만나거나 외국으로 여행 갔을 때 말이 안 통하는 어려움을 느끼는데 다문화인들은 매 순간 생활에서 이를 절감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 여성가족부의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가족 자녀가 ‘차별이나 무시를 받은 경험’은 9.4%로 2012년 조사 때의 13.8%보다는 줄었다. 그러나 15세 이상 다문화 가족 자녀의 18%가 ‘학교에도 다니지 않고 일도 하지 않는 상태’로 나타났다. 이들이 학업을 중단한 가장 큰 원인으로는 ‘학교생활·문화가 달라서’가 18.3%, ‘학교 공부가 어려워서’가 18%로 나타났다. ‘그냥 다니기 싫었다’는 응답도 11.1%에 달했다.

한창 예민한 나이에 다문화 가족 자녀들이 학교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차별적 시선 속에 방치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1만명도 안 되던 초·중·고 다문화 학생은 2017년 11만명으로 늘었다. 서 PD는 “이주민이나 그들의 2세, 3세 자녀들도 결국 대한민국에서 살며 이 사회를 이끌어나가고 발전시킬 주역이 될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미디어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연분홍 벚꽃이 초록이 되듯 자연스럽게 바뀌어야

▲ 서현 PD는 다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건강하게 바뀌려면 TV등 미디어가 균형 잡힌 시선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연주

“깨소금 기획의도 자체가 다문화인을 다문화인으로 보지 않고 그냥 우리 사회에 사는 우리 이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거예요. 봄에 벚꽃을 보면 사람들 모르게 연분홍 벚꽃 잎이 하나하나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초록색 잎으로 싹 바뀌잖아요. 방송으로 보면 ‘디졸브’ 효과를 준 것처럼 자연스럽게 바뀌는 건데, 사람들의 인식도 연분홍 벚꽃이 초록이 되듯 자연스럽게 바뀌어야 해요. 그러면 이 깨소금이라는 프로그램이 다문화 버라이어티 퀴즈쇼가 아니라 다문화라는 수식어를 떼고 그냥 버라이어티 퀴즈쇼로 바뀌겠죠.”

울산에서 나고 자란 서현 PD는 경희대에서 신문방송을 전공한 후 2003년 안동MBC에 입사, 다큐멘터리와 정보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송을 제작해왔다. 중학교 때 기계를 뜯고 조립하는 것을 좋아해 엔지니어를 꿈꿨던 그는 수학이 어려워 그 길을 포기했고, <여명의 눈동자> <우리들의 천국> 같은 드라마나 휴먼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는 PD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깨소금>을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다문화 문제 자체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새로운 장르를 고민하다 만들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다 5년 간 매주 다문화 가족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는 “다문화라는 단어 자체도 사람들을 구별 짓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그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깨소금>을 더 잘 만들어서 이런 ‘구별 짓기’가 사라지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희망을 드러냈다. 또 한편으로는 인공지능과 같은 시대적 화두를 주제로 정규프로그램을 제작해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편집: 조은비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