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질문하지 않는 사회

▲ 고하늘 PD

<맹자>에 좌우봉원(左右逢源)이라는 말이 있다. 좌우, 곧 주변에서 맞닥뜨리는 사물과 현상을 잘 헤아리면 근원과 만난다는 뜻이다. 가까이 있는 사물이 사유의 원천이 되며 그를 통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맹자는 “군자가 올바른 도리로 깊이 탐구하는 것은 스스로 그 도리를 얻고자 해서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맹자의 말처럼 질문을 던져 스스로 답을 얻기보다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답을 달달 외우는 방식을 오랫동안 취해왔다.

우리나라의 주입식·암기식 교육은 정답이 이미 있다고 말한다. 학생은 스스로 답을 찾기보다 주어진 답을 열심히 외운다. 학생은 정해진 답을 외워야 좋은 결과를 받을 수 있다. 학생이 던진 ‘왜’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원래 그러니까’이다. 학생은 왜 공부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열심히 공부할 뿐이다. 주어진 교육과정을 따르지 않는 학생은 문제아가 된다. 답에 관한 다른 해석과 호기심을 차단하는 것이다.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순응과 체념뿐이다.

이런 획일적 교육으로는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는 힘을 기를 수 없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암기식으로 공부하고 정답이 있는 문제만 해결하다 보면 생각의 폭이 좁아지며 창의력을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똑같이 주어지는 질문과 정해진 대답을 암기만 하는 것은 죽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죽은 지식은 학생이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틀 안에 가둔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의 ‘2016년 세계지식재산지표’에 따르면 중국은 한 해에 특허를 110만 건 출원해 2011년 이후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 60만 건, 일본이 38만 건인데 우리나라는 20만 건 수준이다. 이 격차를 따라잡으려면 지식전달 중심 교육에서 학생 스스로 문제와 답을 찾아 질문할 수 있게 교육 현장이 바뀌어야 한다.

▲ 주어진 답을 달달 외우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세상은 바뀌기 시작한다. ⓒ flickr

세상의 변화는 작은 질문에서 비롯한다. 좋은 질문은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게 한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발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질문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학교를 나선다. 정해진 답만 배운 우리는 사회에서 부조리에 직면하고도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지 못한다. 부조리를 마주해도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바꾸려 하기보다 순응하고 체념한다.

“어휴, 그런다고 뭐가 바뀌겠어?” 내가 대학교 3학년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며 1인 시위를 할 때 숱하게 들은 말이다. 정부가 바뀌며 국정교과서 안은 폐지됐다. 우리 사회에서 ‘왜 역사에 관해 한 가지 시선만 교육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있었기에 바뀔 수 있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마주치는 사물과 현상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달아야 우리 사회를 감싸고 있는 획일화한 껍질을 깨고 우리는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다.


편집 :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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