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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을 누가 죽였나
그의 무덤에서 진보언론의 책임을 물어보다
2018년 08월 20일 (월) 18:00:51 이봉수 hibongsoo@hotmail.com
   
▲ 19일 노회찬 의원 묘소에는 일요일인데도 참배객이 거의 없는 가운데 생화들은 시들어버린 지 오래였다. © 이봉수

그가 떠난 지 4주, 인간 됨됨이는 부각됐지만∙∙∙

일요일인 19일 마석 모란공원묘지. 제천에 살고 있어 빈소에 가지 못한 미안함도 덜 겸 해서 찾아간 노회찬 전 의원 묘소는 적막마저 느껴졌다. 말라가는 조화와 바람에 나부끼는 만장 두어 개가 쓸쓸함을 더하고 있었다. 지대한 관심 속에 치러진 그의 장례식과 대비돼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일반 추모객은 없고 한 젊은 여성이 눈물지으며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알고 보니 노 의원 홍보비서였다는 김현숙(28)씨. 그는 의원회관에서 짐을 빼는 등 뒤처리를 하느라 자기도 장례식 후 처음 왔다고 한다. 무덤 앞에는 추모객이 두고 간 액자가 눈길을 끌었다. ‘님이 갈아엎지 못한 불판, 우리가 꼭 갈아엎겠습니다.’

그가 떠난 지 20일로 4주. 장례식 때 내 페이스북 친구가 보내온 메시지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KBS 방송작가였다가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는 그녀는 ‘사람 됨됨이가 궁금할 때 두 가지를 본다’는 건데 내 생각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식당에서 종업원을 대하는 말투가 어떤지, 또 하나는 사내에서 청소하는 분들을 만났을 때 최소한 고개인사라도 하는지, 이 두 가지를 보면 대강 인격의 급이 나온다는 거였다. 노회찬 의원을 떠나보낼 때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장면은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한 줄로 서서 눈물로 배웅하는 모습이었다.

“노 의원은 음지에서 일하는 우리를 인간적으로 대우해줬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이라고 인정했다. 지나가다가 만나면 항상 인사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우리도 인사드리러 나왔다.”(한겨레21, 7월27일)

그동안 추모 기사가 쏟아졌다. 특히 진보언론은 그의 인간 됨됨이를 부각하고 그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받아 정치개혁에 나설 때라고 썼다. 정의당의 지지율도 16%를 기록하며 자유한국당을 따돌렸다. ‘노회찬 효과’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여론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수많은 추모객의 다짐들과 진보언론의 정치개혁 주장은 현실정치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돈 안 드는 선거' 역행하는 진보언론

우선 누가 노회찬을 죽였는지 한번 따져보자. 노회찬의 진보정치를 가로막고 그가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은 보수가 주도해온 한국 정치와 재벌 그리고 언론이다. 이들 기득권동맹은 선거제도와 정치자금 등 모든 면에서 소수파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진보정치인의 성장을 억제해왔다. ‘노동자 대변한다면서 아내의 운전기사는 웬일인가요’라는 <조선일보> 기사는 뒤늦게 사과했지만 사실 진보정당에 관한 보수언론의 악의적 보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노 의원이 돈을 받은 시점은 ‘삼성 X파일 사건’ 때 돈 받은 검사들을 폭로했다가 의원직을 잃은 뒤 20대 총선을 준비하던 때였다. 이 사건은 재벌과 언론이 우리 정치마저 장악하려다 들통난 건데, 그에 맞선 노 의원이 의원직 상실에 이어 정치자금법으로 엮이는 이중피해를 봤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불평등의 정치를 조장하는 법이다. 의원들은 해마다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반면 원외 후보는 총선 120일 전 예비등록 뒤에나 모금이 가능하다. 선거 때 현역의원은 3억원까지 모금할 수 있지만 원외 후보는 1억5천만원으로 제한된다.

문제는 언론이 주장하는 정치자금법의 개정 방향이다. ‘돈 안 드는 선거’나 철저한 선거공영제를 도입할 생각은 못 하고 정치자금 한도를 풀자는 식이다. <한겨레>도 사설(7월31일)에서 ‘원외 정치 신인에게도 최소한 선거 1년 전부터 후원금 창구를 열어주고’ ‘후원금 한도도 전향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국 진보정치의 현실과 진보세력이 뿌리내린 유럽 선진국들의 정치행태와는 동떨어진 발상이다. 노회찬 같은 스타 정치인도 한도를 채우기 힘든데 후원금 한도를 푼들 지지자라고는 노동자에 그것도 비정규직이 주축인 진보정치 신인들에게 혜택이 돌아갈까?

선거공영제가 확립되지 않아 특히 진보정당 정치신인들은 몇 번 선거에 도전하면 빚더미에 올라앉아 정치현장을 떠나는 게 현실이다. 보수정당 후보들은 대개 형편이 나은 편이어서 지난 선거에서 ‘춤 추는 알바생’만도 수십명씩 동원하고 선거에 져도 다음을 기약하는 낙선 인사 현수막을 수십, 수백개씩 내거는 풍경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 묘소 앞에 놓인 액자에 ‘님이 갈아엎지 못한 불판, 우리가 꼭 갈아엎겠습니다’라는 추모 글이 쓰여 있다. © 이봉수

<한겨레>가 진보정당 목소리에 귀 기울였나?

정의당 지지율이 올라가자 <한겨레>는 사설(8월4일)에서 ‘진보정당으로 더욱 책임있는 자세와 헌신이 필요하다’며 ‘국회의원 특활비 폐지, 선거제도∙정치자금법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설은 ‘그것이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의 존재 의미를 분명하게 각인시키는 길’이라고 썼다.

그러나 이 사설은 <한겨레>가 지금까지 진보정당을 대해온 태도에 견주어 보면 진정성이 없다. 정의당은 끊임없이 선거제도와 정치자금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지금까지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진보언론도 큰 비중을 두고 보도하지 않았다. 진보정당의 ‘존재 의미를 분명하게 각인시키는 일’은 진보언론의 책무이기도 하다.

이 사설은 ‘진보정당에 언제 어렵지 않은 시기가 있었겠는가’라고 격려했지만 정작 그들을 어렵게 만든 것은 진보언론이었다. 오세훈-한명숙-노회찬이 맞붙은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일부 진보언론은 완주하겠다는 노회찬 후보를 무시하는 차원을 넘어 오세훈에게 어부지리를 줄 거라고 비판했다.

해방 이래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봉암이 216만표를 얻은 뒤 진보정당이 한번도 위세를 떨치지 못한 데는 진보언론의 책임이 크다. 더 나쁜 보수정당이 집권하거나 다수당이 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조바심에서 사표심리를 부추기고 진보후보 죽이기를 해온 결과 두 보수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정치지형을 빚어냈다.

진정한 보수와 진보가 서로 정권을 주고받는 유럽 정치선진국들은 보수-진보 정당이 양립해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을 대변하는 보수-진보 언론이 양립해 있다. 노동자와 농민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계급배신 현상은 진보언론이 진보정당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수정치인 일거수일투족은 크게 보도하면서∙∙∙

진보정당이 예전부터 주장해온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제 개편 지지발언과 궁지에 몰린 자유한국당의 태도 변화로 도입이 유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형적인 제도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이대로 치르면 다음 총선도 떼놓은 당상’이라는 꿈에 빠져있고, 한국당은 의원수 증원과 중선거구제 등을 제안하며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 한다.

지금 정의당 지지율이 한국당을 훨씬 앞지르고 있지만 다음 총선에서 의석수도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겨레>를 비롯한 한국의 상당수 진보언론은 가치 중심이 아니라 정치부 기자들의 친분 중심으로 많은 보도를 쏟아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잣대로 봐도 보수정치인인 김종인 안철수 손학규 김한길 박지원 같은 이들이 각광을 받은 이유다.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에는 대개 정치부 새내기들이 출입하니 기사 발제 때도 발언권이 작을 수밖에 없다. 노회찬의 촌철살인 발언은 주목받지 못하는 정치인의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노회찬 의원이 마지막으로 낸 법안인 특수활동비만 하더라도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의 원내총무에게 거액이 배분되는 등 소수정당에 불공정한 자금이었다. 특활비는 여론에 밀리면서도 전면 폐지를 꺼리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놔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런 언론∙정치 환경에서 정의당의 ‘영원한 정책국장’ 이재영씨와 ‘영원한 조직가’ 오재영씨는 과로와 생활고로 숨졌고, 노회찬의 진보신당 대표 시절 언론국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제는 훨씬 더 많은 진보정치인이 진보 이념을 추구하다가 생존과 파멸의 갈림길에서 서성이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에겐 '가혹', 노회찬도 생전엔 무시

이른바 ‘진보언론’은 평상시에는 진보정당을 홀대하다가 ‘건수’가 잡히면 보수언론과 다름없는 가혹한 잣대로 비판한 적도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 뒤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절 쓴 <문재인의 운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 기사는 보수언론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칼럼이나 사설이 어찌 그리 사람의 살점을 후벼 파는 것 같은지, 무서울 정도였다.’ ‘그렇게 날카로운 흉기처럼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글을 쓴 사람들이 자신의 글에 대해 반성한 것을 보지 못했고, 글쓰기를 자제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 마석 모란공원묘지에는 수많은 민주인사와 노동운동가들이 잠들어 있다. © 이봉수

마석 모란공원묘지에는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싸우다 숨진 수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다. 진보언론을 지키는 데 평생을 바친 성유보 전 <한겨레> 편집위원장도 함께 누워 있다. 그들이 추구하던 가치들이 노회찬 의원의 죽음으로 실현될까? 아주 조금은 몰라도 많이는 아닐 것이다. 정치∙경제∙언론권력이 깔아놓은 불판은 쉽게 뒤집히지 않는다.

마석에서 서울로 가는 도로에는 막바지 휴가를 즐기고 귀경하는 차량으로 일대 혼잡이 빚어졌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편집 : 나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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