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박선영 기자

▲ 박선영 기자

독일의 최저임금제도가 한국과 달리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의 두터운 사회안전망 덕분이었다. 독일은 저임금 일자리를 줄이고 가계소득을 높이기 위해 2015년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일시적 실업이 발생하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사업장이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은 복지 혜택을 돈으로 환산한 수치인 ‘사회임금’이 높아 저소득층의 낮은 소득을 보전했다. 독일의 실업급여, 무상교육, 연금이 최저임금제도 도입의 쿠션이 되어준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소득주도성장을 꾀하는 문재인 정부는 독일의 두터운 사회안전망에 주목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사회안전망 쪽이 부실한 반쪽짜리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인상해 소비를 촉진한다. 저소득층은 늘어난 소득으로 저축보다 소비를 더 늘린다. 한계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내수 진작으로 이어져 경제가 활성화하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와 생계형 자영업자들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최저임금 인상의 피해자로 전락했다. 사회안전망 확충을 동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먼저,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늘어난 실업률과 줄어든 근로시간으로 발생한 소득 하락분을 보전할 실업급여 제도가 미비하다. 저소득층은 대체로 일용직, 계약직 등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불안전한 일자리를 갖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방책이 부족한 것이다. 인상된 최저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다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자영업자들도 미비한 사회안전망 때문에 자영업으로 내몰린 이들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주창자인 장하성 교수는 이를 두고 ‘한국 사회는 선진국보다 복지가 한참 부족해 실직하면 곧바로 생계형 자본가로 내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은 2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며, 가맹점 본부는 수수료 인하 요구에 묵묵부답이다.

▲ 경기 부진은 최저임금 인상 탓이 아닌 부실한 사회안전망 때문이다. ⓒ 청와대

사회안전망이 없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해야 하는 저소득층의 소득을 오히려 감소시켜 문제를 야기했다. 정책의 핵심은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 증가다. 늘어난 소득이 소비로 이어져 경기가 진작되는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안전망 없이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소득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2012년 기준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사회임금 비중은 12.9%에 불과했다. 이는 평균 40%인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한국에서 저소득층의 실질소득 인상이 일어나지 못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견인해야 할 ‘경제성장’이라는 객차만 있고, 이를 끌어야 할 ‘저소득층 소득 인상’이라는 견인차는 도착하지 않은 꼴이다. 최저임금 인상에만 정책이 집중되면서 저소득층이 대상인 사회안전망 확충 과제들이 등한시된 결과다.

정부는 이제 증세와 과감한 복지예산 편성으로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전해야 한다. 한국의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약 10%로 멕시코보다 낮으며, 약 25%인 독일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 저소득층의 심각한 소득 격차를 메워줄 복지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근본적인 재원 확충 방안은 OECD 평균 1/3 수준인 보유세를 인상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장기적으로 정착돼야 할 소득주도성장의 주요 정책이다. 하지만 그 정책이 정착하기까지 교육, 주거, 복지 등 사회안전망 확충에도 힘써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


편집 : 나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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