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음악영화제 경쟁작] <수잔나의 일곱 번의 결혼> 리뷰

그녀가 남편을 여섯이나 죽인 이유

▲ 영화 <수잔나의 일곱 번째 결혼> 포스터.

비장해 보이지만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는 한 인도여성. 그녀의 얼굴이 반쯤 가린 채 숫자 7이 커다랗게 적혀있다. ‘수잔나의 일곱 번의 결혼(7 Sins Forgiven)’이라는 도발적인 제목과 포스터의 신비로운 느낌에 이 영화를 선택했다.

인도에서는 여성이 이혼을 제기할 수 없다. 그런데 수잔나(Susanna)가 일곱 번이나 결혼을 하다니,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137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 그녀의 30년 세월이 압축돼 있다. 그녀의 남편 여섯은 차례로 죽음을 당한다.

스포일러를 조금 담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섯 남자들은 모두 그녀의 손에 죽었다. 왜? 그리고 일곱 번째 남편은 누구? 원제 ‘7 Sins Forgiven’을 통해 내용을 조금 짐작했다면 당신은 ‘스릴러 마니아’. 그렇지 않다면 계속 리뷰를 읽으며 상상해보길 바란다.

수잔나의 일곱 남편은 누구?

▲ 영화 트레일러 영상 중 화면 캡처.

그녀의 30년 결혼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나열된다. 남편의 직업과 성격, 수잔나가 그들을 죽여야만 했던 결정적인 이유가 에피소드 위주로 전개된다. 여섯 남자들은 모두 다른 성격과 직업을 가졌다. 첫 남편은 대령이었는데 폭군이었다. 수잔나와 파티에서 춤을 춘 중위를 폭행하는가 하면, 하인을 채찍으로 때려 눈을 멀게 한다.

두 번째 남편은 유명 록밴드 보컬. 여자와 마약에 빠져 밴드 활동을 중단한다. 그녀의 극진한 간호와 내조에도, 마약을 계속 주사하며 점점 타락한다. 다음 남편은 이슬람교도. 멋진 시를 읊는 낭만파지만 잠자리는 그렇지 못했다. 특이한 성적 취향으로 매일 밤 그녀를 때리고 물어뜯었다.

네 번째 남편은 러시아 영사관에서 과학을 담당하던 사람. 대단한 재력가로서 부와 명예를 쥐고 있었지만 인도의 핵무기를 조사하러 온 러시아 스파이였다. 게다가 러시아에 아들까지 둔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녀는 이 사실을 알고 실신하고 만다. 이런 수잔나를 치료해준 의사가 여섯 번째 남편. 독버섯을 연구하던 그는 수잔나를 몇 차례 죽이려 했다.

그녀는 일곱 번째 남편만은 죽이지 않았다. 아니 죽일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누구인지는 여기서 밝히지 않겠다. 원제를 생각하며 영화에서 답을 찾아보시길.

일곱 남편과의 결혼이야기가 압축되어 있는 트레일러 영상

수잔나는 인도 여성의 대리만족

“모든 부인들은 살면서 한 번은 남편을 죽이는 상상을 할 거야.”

그녀는 자신을 짝사랑해온 그녀의 마구간지기 소년, 아룬에게 얘기한다. 일곱 번째 남편과 결혼하기 바로 전날, 해변에서 그녀와 아룬이 나눈 대화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감독이 얘기하고 싶은 바를 수잔나의 입을 통해 말한다.

“여자들은 아이 때문에 참아주는 거야.”(수잔나)
“그래서 아이를 안 낳았던 거군요.”(아룬)

▲ 수잔나 역할을 맡은 미스 월드 출신의 '프리얀카 초프라'.

수잔나 캐릭터는 인도에서 보기 드문 여성이다. 그녀는 당당하게 사랑을 택하고 결혼한다.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욕망을 참지 않고 표현한다. 영화인만큼 살인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표출되지만 말이다. 영화를 통해 그녀는 남편의 폭행이나 외도에 ‘무조건 인내’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인내를 미덕으로 아는 인도 여성에게 결혼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그녀는 충격으로 다가가 것이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드러난다. 하인들이 앉아서 그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 등이 그것이다.

“그녀는 어릴 적 걸어서 등교했지. 지나가다 미친개들을 만나도 피하지 않았어. 오히려 총을 가지고 다니면서, 미친개들을 만나면 죽여 버렸지.”

그렇다고 결혼생활 내내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표절 심의에 걸린 둘째 남편을 위해 원작자에게 돈을 지불하고, 마약에 찌든 그를 치료하고 돌보기도 한다. 성적 취향이 특이한 남편에게 맞춰주려 노력하는 모습도 나온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시점에 다다랐을 때, 무조건 희생하고 인내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난다. 아내로서가 아닌, 주체적인 모습도 그려진다. 남편을 죽이고 혼자 됐을 때, 자신을 ‘부인(마담)’이 아닌 ‘수잔나’로 불러달라고 한다.

하지만 감독이 마냥 쿨하지는 않은 것 같다. 주인공은 마지막 일곱 번째 남편을 만나면서 그 동안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대목이 나온다. 감독은 수잔나를 통해 현실에서 그렇지 못한 인도 여성들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인도영화다운 유쾌함이

▲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포스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최신 인도영화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퀴즈쇼를 통해 백만장자가 되지만 결국엔 사랑을 택한다는 이야기다. <선샤인> <28개월 후> 등을 연출한 영국 대니 보일(Danny Boyle)이 감독을 맡았다. 하지만 감독을 제외하고 대다수 스태프와 출연진 전원이 인도 현지인인데다 모두 인도 현지 촬영으로 제작되어 화제가 됐다. 그래서 온전하지는 않지만 ‘인도영화’라고 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2009년 아카데미상 8개 부문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도 인도영화의 특징을 몇 가지 살필 수 있다. 영화 마지막에는 주인공 남녀가 거리 시민들과 함께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갑작스럽지만 신나게 진행된다.

<수잔나의 일곱 번의 결혼>은 제작진마저 인도인인 ‘뼛속까지 인도영화’다. 엔딩만 춤과 음악으로 처리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달리 이 영화는 전반에 걸쳐 이런 장면이 이어진다. 음악감독 출신 '바드와즈(Vishal Bhardwaj)'감독의 작품답게 영화 전반에 뮤직비디오 느낌이 물씬 풍긴다.

영화에서는 여섯 남편의 성격과 살해 이유를 소개할 때마다 에피소드를 몇 개 보여준다. 에피소드는 주인공들의 춤과 노래, 그리고 간단한 스토리들이 컷으로 교차편집된다. 마치 뮤직비디오를 연상하게 한다. 여섯 남편을 일일이 열거하지만, 이 편집방식 덕분에 전개가 빠른데다 음악과 춤이 계속되어 지루할 틈이 없다. 남편이 죽는 심각한 상황에서 이런 빠른 전개와 독특한 편집 방식은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이 시점에서 이 영화가 스릴러인지, 코미디인지 헛갈리게 된다. 역시 인도영화 특유의 장르 혼합과 코믹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쩌면 이런 부분에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인도영화 자체의 특징으로 이해하고 즐긴다면 좋을 성싶다.

마지막 스포일러 -그녀는 죽지 않았다

영화는 수잔나가 총으로 자살하는 클로즈업 장면으로 시작한다. 수잔나가 죽었다는 결론을 먼저 보여준 셈이다. 이 영화는 아룬이 수잔나를 회상하는 액자식 구성이다. 그녀의 검시관이자 그녀의 마구간지기였던 아룬이 그녀의 죽음을 발표하고 조사하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녀는 왜 자살을 해야만 했을까, 궁금증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다. 그 단서는 영화 뒷부분에 짧게 제시된다. 영화 중간에 제시되는 단서를 보면서 사건 전말을 추리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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