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 칼럼] 딜레마 빠진 송 장관 대신 문민 국방장관 임명하라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국방부가 27일 장성 76명 감축 등을 뼈대로 하는 국방개혁안을 발표했다. 지금 61만8천명인 병력은 22년까지 50만명으로 19.1% 줄인다면서 장성은 17.4%만 줄이겠다니 장성 감축에서는 개혁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안이다. 이명박 정부가 수립한 60명 감축안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국회에서 기무사 육군 장성과 대령이 해군 출신 국방장관의 약점을 잡고 을러대는 모습은 육사 중심 정치군인들이 스스로는 못된 버릇을 고칠 수 없음을 방증한다. ‘군사전문가’라는 이들과 대다수 언론은 송영무 국방장관의 무능과 기무사 고위장교들의 하극상을 부각하면서도 기무사 개혁을 위해 장관을 물러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군 인권 신장에 공이 큰 임태훈 군인권센터소장과 계엄령 문건을 처음 폭로한 이철희 의원도 하극상에 초점을 맞추고 송 장관이 군 개혁의 적임자라며 경질에는 반대했다.

가장 중요한 국방개혁은 문민통제

육군 중심의 군을 개혁하려는 송 장관의 노력에는 평가할 만한 부분이 있고 기무사 고위장교들이 이례적으로 국회에 몰려나와 ‘진실의 수호자’인양 폭로한 데도 ‘공작의 연장선’이 깔려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송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고 단언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가장 중요한 국방개혁은 군을 쿠데타 위험 집단이 아니라 민주주의 수호자로 만드는 문민통제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확실한 문민통제는 국방장관부터 문민으로 임명하는 것이다.

기무사 고위장교들은 온건한 기무사 개혁에도 불만을 품고 송 장관을 낙마시키려 했다. 이제 그들을 엄중하게 다스리는 방법은 송 장관 유임이 아니라 강력한 의지를 가진 민간인을 투입해 문민통제의 준엄한 맛을 보이는 것이다. 흔히 북한과 대치하고 있으니 국방장관은 군 출신이어야 한다는 논리가 있다.

그러면 국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은 군 미필자와 여성이 맡아도 괜찮은 거였나? 미국에서는 군 출신을 국방장관에 임명하려면 전역 후 10년이 지나야 할 정도로 문민 우위 전통을 지켜왔다. 2017년 트럼프가 매티스를 임명하자 67년간의 전통이 깨졌다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래도 매티스는 전역 후 3년이 지났고 미군 내에서 주류라 할 수 없는 해병대 출신이었다.

▲ 송 장관은 27일 '국방개혁 2.0'에 관한 대국민 브리핑에서 '문민통제 확립'을 천명했으나, 확실한 문민통제는 국방장관부터 문민으로 임명하는 것이다. ⓒ 국방부

기무사 문건은 문민통제 따돌린 쿠데타 계획서 

외국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조선의 병조판서는 남이 장군 등 극소수를 빼고는 다 문민이었고 강감찬과 윤관 등도 문민이었다. 로마제국이 본토에 군단을 두지 않았던 것은 민간정부가 무소불위의 군부에 맞설 무력이 없기 때문이다. 케사르가 군단을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거나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한 것은 바로 쿠데타로 이어졌다.

우리 역사에 쿠데타가 반복된 것은 문민통제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쿠데타가 일어나랴’라는 안이한 생각이야말로 쿠데타 음모가 싹트는 토양이다. 그 토양에는 두 차례나 성공한 쿠데타의 향수에 빠지기 쉬운 정치군인들, 궁지에 몰린 보수 정치세력, 그들을 엄호하는 보수 언론이 함께 서식해왔다. 그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는 문건이 폭로된 뒤에 보이는 반응 속에 충분히 감지된다.

이번 문건은 단순한 대비계획이 아니라 기무사령관도 고백했듯이 실행의지가 있다고 봐야 한다. 계엄 주무부서가 아닐뿐더러 대통령에 직보하는 친위부대 격인 기무사가 비밀리에 계엄실행계획까지 세운 것은 ‘쿠데타 음모’다. 촛불시위는 세계가 놀랄 만큼 평화로웠지만 설령 계엄상황이 도래한다 할지라도 쿠데타냐 아니냐의 판단 기준은 법적 절차를 거치느냐에 달려있다. 계엄은 국회의 해제요구권을 통해 견제되는데 기무사는 그것을 원천봉쇄하려 했으니 쿠데타가 명백해 보인다. 세계의 모든 쿠데타는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 장치를 파괴함으로써 성사됐다.

국방장관이 ‘쿠데타 음모’에 가담한 꼴

계엄 문건은 한민구 국방장관의 지시로 작성했다지만 그 윗선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최소한 국방장관이 ‘쿠데타 모의’에 가담했다는 얘기가 된다. 문민통제의 전통이 확고한 나라에서는 국방장관이 군의 대변자가 아니라 군부를 견제하는 구실을 한다. 한국전쟁 때 맥아더의 핵폭탄 투하계획을 막은 것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막은 것도 문민통제의 성과였다. 일본에서는 군부가 내각에 들어가 전쟁을 일으킨 뒤 방위청 장관과 방위성 대신은 전부 민간인으로 보임해왔다. 독일은 동-서독 대치 국면에서도 문민 국방장관으로 일관했고, 동독은 통일 과정에서 반정부 시위가 격렬할 때도 ‘인민의 군대’인 군을 투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남한과 북한도 독일처럼 통일하려면 각자 군부의 영향력을 줄일 필요가 있다. 해군 출신인 송영무 장관의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그는 육군 중심의 군을 개혁하는 데는 일정부분 성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군축과 평화협정으로 가는 데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는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에 기여한 문정인 특보를 “상대하지 못할 사람”이며 “학자 입장에서 떠드는 것”이라고 폄하했다. 그러면 자신은 군부 입장에서 떠든 건가? 국방장관이 군부를 대변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그는 대북 해상봉쇄 발언을 하고 미국도 반대하는 전술핵 배치를 요청하는가 하면, 세계 6개국만 보유한 핵잠수함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필자가 해군 장교 교육을 받을 때 서해는 수심이 얕아 대형 핵잠수함보다는 중형 디젤 잠수함이 기동성이 있고 효율적이라고 배웠는데, 그동안 서해의 수심이 깊어졌나, 전략∙전술교리가 변했나?  해군에서는 ‘대양해군론’을 펴기도 하는데 이는 해군의 오랜 망상일 따름이다. ‘대양해군’보다는 연안 방어에 주력해 천안함 사고 같은 것이 나지 않도록 하고 세월호 참사 같은 것이 발생했을 때 국민을 구조하는 모습을 모두들 보고 싶어 한다.

군정권은 국방장관, 군령권은 합참으로 분리

절대다수 엘리트 장교들 머리 속에 군비감축은 없다. 사관학교나 국방대학원 시절부터 비슷한 생각을 갖도록 양성된 그들은 합동부서 근무 등으로 친밀해지기 마련이다. 김관진 전 장관이 석방되자 송 장관이 “동료로 같이 근무했는데 참 다행”이라고 한 것은 솔직한 발언이다. 계엄 문건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기무사 개혁의 일환으로 처리하려 한 송 장관의 처신은 ‘동료의식’의 발현이다.

군 출신이 아닌 자가 국방장관이 되면 ‘군에 영(令)이 서겠느냐’는 우려는 기우다. 지금 국방장관은 군정권(軍政權)과 군령권(軍令權)을 다 갖고 있는데 군령권은 원칙대로 합참에 넘기고 군정권만 갖고 있으면 된다. 합동참모본부는 말 그대로 군 최고통수권자의 참모진이지 국방장관의 참모진이 아니다. 군정권은 업무 성격상 군 출신이 아니라 기획예산을 다룰 줄 아는 기획재정부 출신이나 관련 학자 또는 개혁의지가 강한 정치인이 더 잘 행사할 수 있고 여성이 맡아도 된다.

몇 년 전 스페인에서 임신을 한 여성 국방장관이 의장대를 사열하는 장면이 보도됐는데 그는 법학박사 출신이었다. 지난 2월 나토 회의에 참석한 독일 국방장관은 정치인이며 프랑스 국방장관은 철도회사 임원 출신인데 둘 다 여성이다. 여성이 맡으면 자식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들이 더 안심할 수도 있다.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국방장관이 군 출신일 필요는 없다는 거다.

1차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끈 문민 출신 육군장관 클레망소는 “전쟁은 너무나 중요해 장군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했다. 국방개혁도 너무나 중요해 장군 출신 국방장관에게 맡길 수 없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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