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제주 대안학교 교사 김광철

“광대, 나 할 말 있어.”

지난 5월 23일 제주시 아라이동 은성사회복지관의 보물섬학교 임시교실. 13세부터 16세까지 남녀 청소년 11명이 네모난 앉은뱅이 탁자를 디귿자로 이어 붙여 빙 둘러 앉아 있다. 곱슬머리에 모자 달린 웃옷을 입은 남학생이 손을 들고 ‘광대’를 부르자 흰 칠판 앞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미소를 띠며 발언기회를 준다. 아이들이 ‘광대’라고 부르는 선생님은 보물섬학교에서 8년째 가르치고 있는 김광철(31) 교사다. 이 학교 아이들은 선생님의 별명을 부르며 친구처럼 서로 말을 놓는다.

선생님 별명을 부르고 말을 놓는 아이들

“아이들과 평등하게 대화하기 위해서죠. 이렇게 부르는 게 선을 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아이들이 더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하도록 돕습니다.”

▲ 보물섬 학교의 신축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임시 교실에서 수업하고 있는 김광철 교사와 학생들. ⓒ 조승진

지난 2011년 제주시 오라2동에서 문을 연 대안학교 보물섬교육공동체(이사장 강한섭)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 김 교사는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평화나비 활동 등에도 앞장서고 있는 지역 활동가다.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대 사회교육과를 나온 그는 다른 졸업생들이 걷는 제도권 교사의 길을 버리고 대학시절 인연을 맺은 보물섬학교에서 ‘진정한 교육’을 탐색하고 있다. 기존 공교육이 아이들을 나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아이들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키우는 교육을 위해 대안학교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학교로 오게 된 과정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을 하다 보니 지금 이곳에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 선배가 보물섬교육공동체의 방과후 선생님이 아프니 대신 보결 교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게 첫 인연이었다. 당시 그는 정연일 교장과의 대화를 통해 그동안 옳다고 믿어왔던 공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존학교와는 다른 교육을 하는 곳에서 일해야 자신도 삶에서 중요한 게 뭔지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예컨대 일반 학교에선 촛불집회 참석 등 교사의 정치사회 활동을 제약하면서 ‘비판 능력 없는 아이들이 영향을 받는다’고 관료적 통제를 가한다. 김 교사는 “아이들은 (신체상) 약한 존재지만 스스로 고민하는 의지가 굉장히 강하다”며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할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교육에서 찾기 어려운 유연성이 장점

그가 꼽은 보물섬학교의 강점은 유연성이다.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에 맞춰 교육 커리큘럼을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 공교육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일반 학교에선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과목별 커리큘럼이 있어 진도 중심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반면 보물섬 같은 대안학교는 수업 중에도 아이들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 제기하면 그 부분을 추가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보물섬학교에서는 1주일 동안 관련 수업을 했다고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교사가 설명한 후 세월호 문화제도 함께 하고, 다큐멘터리 제작과 토론 등의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진행했다.

보물섬학교는 ‘사람’ ‘생명’ ‘공동체’를 교육의 중심에 둔다. 그리고 실생활에 직결되는 수업에 중시한다. 예를 들어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직접 배식을 하고 함께 설거지하는 것 자체가 수업이다. 청소, 간식시간도 생활교과수업에 포함된다. 이런 수업을 통해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고 자신이 삶의 주인임을 깨달을 수 있다고 김 교사는 설명했다.

▲ 김광철 교사가 수업 중 학생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 조승진

“교육과 일상은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운 가치를 집에서도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학부모들과 만나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부모들은 격주로 진행되는 ‘방모임’이라는 담임교사와의 대화에 참여해 교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나 교육 현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김 교사가 맡은 방은 ‘아꼬운방’이다. 아꼬운은 제주사투리로 ‘귀여운’이란 뜻이다. 아빠·엄마를 줄인 말인 ‘아마회의’도 격주로 열린다. 모든 부모는 보물섬교육공동체에 회원으로 가입해야 하고, 아마회의에도 참석해야 한다. 입학 전엔 학부모 면접도 하는데, 학교가 실현하고자 하는 교육관과 부합하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보물섬학교 재학생 대다수는 이 학교가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하는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맡긴 아이들이라고 한다. 가끔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들의 상태가 호전되면 부모가 다시 일반 학교로 전학시키기도 한다.

시험 없이 스스로 평가하는 아이들

보물섬학교는 시험을 보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 스스로 자기가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평가한다. 대개 3개월에 한 번 정도 아이들에게 평가서를 주고 교사가 질문을 던진다. ‘이 수업은 어땠나’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낀다면 어떤 부분이고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등 질문과 답변이 계속 오간다. 이렇게 아이들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게 오히려 학습 의욕을 높인다고 김 교사는 설명했다. 한번은 제주대 에너지공학과 교수가 와서 수업을 했는데, 아이들이 의욕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에 놀라고 갔다고 한다.

보물섬학교는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 등 총 9년제로 이뤄져 있다. 졸업생들은 고등학교 과정이 있는 다른 대안학교를 찾거나 검정고시를 거쳐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부모가 집에서 가르치는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학생은 60여 명, 교사는 5명이다. 학비는 한 달 40여만 원을 내는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기금에서 지원을 하기도 한다.

현재 보물섬학교는 제주시 오등동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신축건물을 지어 이전했다. 여기엔 교실 6개와 샤워실 등 부대시설이 갖춰져 있다. 보물섬 학교는 재정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공교육에서 부족한 부분을 대안교육이 보완하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 보물섬학교 신축건물 공사 당시 현장을 둘러보던 김광철 교사. 학부모들의 성금으로 새 건물을 지었다. ⓒ 조승진

사회참여는 자연스런 삶의 방식

그는 대학시절 보물섬학교를 알게 된 후 자퇴까지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굳이 공교육 교사를 목표로 한 공부, ‘스펙’을 위한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반대하고 난리가 난 후’ 일단 학교는 졸업하기로 타협을 했다. 대신 보물섬 교사가 되기 위해 1년간 교육철학과 생태환경 등에 관한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동료 교사들과 많은 토론을 했다. 그는 “보물섬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했던 시간은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온 내 자신의 껍데기를 벗겨내는 과정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학생이었던 2014년 제주 평화나비 활동을 시작했고 2017년에는 대학생 대표를 맡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는 하루 종일 제주대 정문에서 진상규명 요구 서명 운동을 벌였다. 1948년의 민중학살 사건인 ‘제주 4·3’에도 관심을 기울여, 학과 후배들을 모아 4·3 기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는 이런 활동들 모두 ‘어떻게 살 것인가’ 물음에 따른 자연스런 참여였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의 사회참여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시선이 있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광대는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 '어떻게 살 것인가’ 물음에 따라 선택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김광철 교사. ⓒ 조승진

교사로서, 활동가로서 그가 꿈꾸는 세상은 누구도 차별받지 않으며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게 사는 곳이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도 대안교육에 더욱 힘쓸 생각이다. 올바른 교육이야말로 그가 꿈꾸는 세상을 위해 중요한 조건이고, 그가 보람을 느끼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곳에 훌륭한 교사들이 더 많아지고, 다른 곳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발견하게 된다면 언제든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평생에 걸쳐 고민해야 하는 일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편집 : 박경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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