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청년도 집에서 살고 싶다”, 메아리 없는 청년정책

‘지·옥·고’를 아시나요. 지옥고(地獄苦)? 지옥에 가면 받게 된다는 극심한 고통을 말하는 걸까. 견디기 힘들기로는 지옥의 고통만 한데 뜻은 다르다.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축약한 말로, ‘지옥고(地屋考)’다. 집없는 많은 청년들이 방세를 아끼려고 전전하는 곳이다. 

그런 ‘지·옥·고’ 출신 청년들이 서울시장에 출마했다. 올해 서른세살 무주택자인 우인철(33·우리미래당) 후보와 ‘여성 1인 가구’ 신지예(27·녹색당) 후보.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에서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청년들이 직접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것이다.

반지하·옥탑방·고시원 전전하는 ‘지·옥·고’ 청년들

6.13 지방선거에 출마한 각 정당 후보의 공약에는 청년정책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청년주거 복지정책은 필수로 들어가 있다. 하지만 주요 정당 후보들은 어느 후보도 청년정책에 비중을 두고 실효성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청년주거 복지 등은 제쳐두고 네거티브 공방과 후보단일화 같은 정치공학으로 날이 샌다.

▲ 청년 주거권 확보를 위한 청년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이 지난 6일 개최한 ‘주거파티, 청년도 집에 살고 싶다’에 참석한 청년들이 청년주거실태 자료가 첨부된 포스터를 살펴 보고 있다. ⓒ 이창우

그렇게 지방선거가 흘러가고 있던 6일 저녁 6시 30분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열린 ‘청년주거파티, 청년들도 집에 살고 싶다’ 행사에 청년 서울시장 후보들이 참석해 청년주거문제 해결을 역설했다. 청년주거권 확보를 위한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이 6월 3일 무주택자의 날을 기념해 만든 자리였다. 

“‘청년’의 입장에서 ‘청년’에게 ‘잘 지내냐’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청년들의 현실, 그 중에서도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 비주택)로 함축되는 주거불안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지하·옥탑방·고시원을 전전하고 있는 우인철 후보는 스스로 겪었던 ‘지·옥·고’를 소개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 '지·옥·고' 출신 우인철 후보(가운데)가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서 살던 시절을 이야기하며 청년주거 실태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최지희(28)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오른쪽은 임소라(34) 민달팽이협동조합 이사장. ⓒ 이연주

비오면 물 흘러 내리고, 아침엔 서리 끼는 반지하·옥탑방

“재수를 위해 처음 상경했을 때 월 35만원 내는 고시원에 들어 갔어요. 서울에 이렇게 많은 아파트가 있는데 어디에도 내 집은 없었습니다. 큰길가에 있어 창밖으로 차 다니는 소리가 시끄럽고, 창을 열면 검은 먼지가 훅 들어 왔어요. 휴학을 하고는 서울역 근처에 22만원 내는 창문 없는 고시원에도 살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살게 된 곳은 경복궁 근처 월세 40만원짜리 옥탑방이었다. ‘해지는 모습을 보며 낭만에 젖었던 적도 있지만’ 겨울에 난방을 켜지 않으면 실내온도가 6~7도로 내려갔다. 아침에 이불 속에서 나오면 입김이 하얗게 나오고, 너무 추워 머리를 감을 수 없어 보일러를 몇 번 켰다가 난방비가 20만원이나 나온 적이 있다.

'젊을 때나 이런 데 살아보지 언제 그래 보겠느냐’는 집주인 말에 덜컥 월세계약을 하고 반지하방에 세를 들기도 했다. 비 오는 날이면 벽과 천장에서 물이 흘러내렸고, 잘 때는 머리맡에서 민달팽이가 기어가는 것을 보며 살았다. 민달팽이는 딱딱한 껍질이 없는 달팽이로, 집 없는 청년과 처지가 비슷하다. 미리 알았다면 절대 그런 집에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 했지만,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 부모님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받아 쓰는 대학생과 취업을 하지 못한 졸업생,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청년들의 주거는 '지‧옥‧고'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 청년들의 현실이다.

우 후보는 이처럼 청년주거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원인으로, 청년을 대변해 줄 청년정치인이 부족한 것을 먼저 꼽았다. 20대 국회에 청년세대(20~30대, 만39세 이하)의원은 신보라(35·자유한국당)·김수민(32·바른미래당) 의원 단 둘 뿐이다. 그나마 둘뿐인 청년 의원들도 국회 의정활동에서 청년 문제를 특별히 부각하거나 강조한 것이 별로 없어 청년의 문제를 대변하고 해결해줄 정치인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또 이번 지방선거 출마자 9천3백여명 중 청년세대(만 39세 이하)는 656명으로 7%에 불과하다. 그는 “청년 정치세력이 책임감을 갖고 청년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청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며 “청년 후보가 의미있는 득표를 한다면 그 자체만으로 기성정치권에 청년에 대한 관심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242개 주민센터 고층화로 청년임대주택 20만호 확보”

▲ 우인철 후보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임대주택 정책뿐 아니라 세입자상담, 주거바우처, 보증금지원제도, 세입자상담센터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야 지·옥·고로 함축되는 청년의 삶이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이창우

우 후보는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청년임대주택 건설을 제시하고, 임대주택 건설을 위한 시유지 확보를 선결과제로 지적했다. 임대주택 공급은 모든 서울시장 후보들이 내세우는 공약이다. 문제는 땅이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후보는 철도부지와 산업단지 중 지원시설을,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는 지하철역 상부공간을 이용한 주상복합형 ‘메트로 하우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 부지가 어디 얼마나 있는지, 철도 지하철 부지의 안전성이나 소음 문제 해결 방안 등은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우 후보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현재 서울시 전지역에 있는 424개 주민센터를 활용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서울시내 각 동마다 있는 주민센터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해 그 위에 고층건물을 세워 1, 2층은 주민센터로 활용하고 그 위층들은 청년임대주택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래돼 낡은 주민센터부터 리모델링을 하면서 단계적으로 주민센터를 임대주택으로 개조해 나가면 20만호 정도 청년임대주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청년들이 월세 등 주거 관련 법률 등을 잘 몰라 피해를 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가 지정하는 공인중개사가 상주하는 세입자상담센터 설치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는 “반지하방을 계약했을 때, 하자가 있어 해지하고 싶어도 법을 잘 몰라 집주인이 하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일을 많이 겪었다”며 “일반 공인중개사들은 집주인과 가까워 청년들이 분쟁에 도움을 청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우 후보는 청년주거 지원을 위한 주거바우처 인상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서울시가 지금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5만원까지 월세를 지원해주고 있는 것을 10~20만원으로 올려 주는 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RIR(소득대비 임대료 비율) 평균치가 20%인데 청년들은 30%에 육박한다”며 “주거바우처 지원을 대폭 올려 청년들의 RIR비율을 낮춰 줘야 한다”고 말했다.

더 내고, 덜 받는 여성 1인가구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취를 시작했어요. 경찰서 건너편에 살았는데, 사람들이 많은 곳, 이왕이면 경찰서 앞에서 살아야 안전할 거라는 부모님 생각대로 했지요. 1년 반 정도 살았지만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나왔어요.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문을 열려고 한 흔적을 발견하고 너무 무서워 얼마 후 이사했습니다. 이런 일은 저 혼자만 겪은 것이 아닐 겁니다.”

여성 1인가구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점점 늘어가면서 여성들은 청년으로서, 여성으로서 이중의 고통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는 ‘여성 1인 가구’가 겪는 주거불안의 고통을 청년들과 나눴다. ⓒ 이연주

신 후보는 “집은 편안해야 하는 공간인데 여성들은 항상 누군가 자신의 집을 엿보고 있지 않을까 걱정한다”며 “몇몇 친구들은 일부러 남자신발을 현관에 놓아두거나, 남자 옷을 베란다에 걸어두기도 한다”고 전했다. 지금도 서울시는 ‘여성 1인가구’를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는 있다. 

도어벨을 설치해 누가 집에 침입하면 어플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거나 방범창을 설치해주는 정책 등이 있다. 그러나 신 후보는 “이런 제도들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이 못된다”며 “보다 확고한 방안들이 강구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폭력, 데이트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을 위한 서울시 25개지역 보건소 젠더건강센터 설치, 심리상담 지원, 몰카촬영 피해자들을 위한 범죄영상 삭제 지원, 서울시 산하기관 성폭력 중징계 정책 등이 필요하다”며 “우리 사회가 한발 더 나아가려면 청년, 여성 문제를 함께 풀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주거파티, 청년도 집에 살고 싶다’ 행사에 참석한 청년들이 녹색당 신지예 후보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이창우

신 후보는 “2017년 국회 교통위 자료를 보면 여성 세입자의 임대료 부담이 남성보다 10만원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원대책 등을 촉구했다. 여성들은 방을 구할 때 큰 도로에 있는지, 집에 방범용 창살은 설치돼 있는지, 층수가 낮지는 않는지 등 안전에 관계된 요소를 많이 고려한다. 그런 조건들을 감안하다 보면 임대료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남성 대비 여성임금 비율은 64.7%에 불과하다. 여성 1인가구는 일반적인 청년들보다도 덜 받고 더 내는 구조적 차별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신 후보는 청년들의 주거불안이 법과 제도의 미비에서 초래된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임대차보호법은 건물주가 가장 높은 곳에, 세입자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법”이라며 “근본적으로는 국회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지만 서울시장이 바꿀 수 것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그 중 하나가 표준계약서 전산화다. 현재 서울시에서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놓았지만 실효성이 없는 만큼 전산화를 해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산화 없이는 표준임대료제도나 전월세상환제가 실효성이 없다”며 “서울시가 모든 계약서를 전산화하면 통계를 내 임대료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 전월세상한제를 실시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년이 참여해야 청년정책 현실화한다”

▲ 정의당 김종민 서울시장 후보가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과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 이창우

이날 행사에는 청년은 아니지만 청년정책에 관심이 많은 정의당 김종민(47) 서울시장 후보도 참석했다. 

김 후보는 “용산지역 재개발세입자들이 쫒겨날 때 그들을 도왔던 것이 정치를 시작한 계기”라며 “이미 그 당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강력히 주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월세상한제를 만들기 위해 ‘공정임대료 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해관계자 대표들이 협의해 공정임대료를 만들면 그 임대료를 기준으로 세입자들이 집주인과 충분히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계약갱신청구권 수준을 넘어 별다른 문제가 없을 때 세입자를 쫓아낼 수 없도록 하는 ‘세입자 계속 거주권’을 서울부터 시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청년들의 직접 참여가 정책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며 “정의당이 다른 기성정당들보다는 비교적 젊고, 청년들과 많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대안적 주거모델 ‘달팽이집’을 운영하고, 청년임대주택에 반발하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등 민달팽이유니온의 주요 활동을 담은 영상이 소개됐다. ‘달팽이집’ 거주자이기도 한 팟캐스트 <나혼자 안 산다>의 DJ 김세현 씨는 “입주자들과 함께 부대껴 지내면서 함께 성장하고 돌보고 있다”며 “’이 정도 커뮤니티는 있어야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다’는 본을 보여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행사를 총괄한 민달팽이유니온 이한솔(29) 사무처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청년 정책문제가 도외시되기도 했고 지방선거 자체에 관심이 덜하다”며 “이 기회에 주거문제를 다시 환기하고 구현하기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민달팽이유니온이 처음 활동을 시작했던 8년 전과 달리 지금은 ‘청년주거’가 익숙한 의제로 떠올랐다. 그는 “그런데도 법적, 제도적 측면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정치 어젠다로만 이용되는 경향이 있다”며 “본질적인 문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과제와 고민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일 20대 전문 연구기관인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및 지자체가 추진중인 청년정책에 만족한다는 비율은 13.0%밖에 되지 않았다. 불만족 이유로는 ‘단기간의 성과중심 추진 방식’ 때문이라는 응답이 51.7%, 청년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관심 부족이 33.0%, 청년 정책 홍보 미흡이 28.2%를 차지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한 청년정책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스스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날 현장의 분위기이자 메시지였다.


편집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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