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니] EBS 파일럿 '조식포함 아파트'

아파트 1003만호 시대다.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47.8%에서 2016년 60.1%로 상승했다. 절반 이상 인구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파트는 많은 세대를 수용하면서 치안과 복지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높아진 아파트 층수만큼 우리는 이웃과 무관심의 층을 높이고 있다. 고독사와 이웃 간 다툼 등 이웃 간의 정은 없어진 지 오래다. 이런 아파트를 배경으로 5월 20일 종영한 4부작 EBS 파일럿 프로그램 <조식포함 아파트>는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의 정을 찾기 위해 작은 이벤트를 벌인다.

일류 셰프의 조식 뷔페가 우리 아파트에?

최근 아침밥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2016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아침 식사 결식률은 남자 29.5%, 여자 24.9%다.  네 명 중 한 명이 아침을 먹지 않는다. 아침에 밥을 먹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1인 가구 증가나, 이른 출근으로  아침을 챙겨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 이웃과 함께 아침을 먹으며 공동체의 정을 느끼는 EBS 파일럿 프로그램 <조식포함 아파트> © EBS <조식포함 아파트>

<조식포함 아파트>는 ‘데면데면한 이웃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며 공동체의 정을 느껴보는 프로그램’ 이라는 기획의도를 가지고, 바쁜 현대인들에게 아침을 챙겨주는 스토리 구조를 취하고 있다.

박명수, 알베르토 몬디, 이혜정 요리연구가, 신효섭 셰프가 출연하는 <조식포함 아파트>의 구성은 단순하다. MC와 셰프가 직접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주민들에게 식재료를 기부받아 아침 식사를 만든다. 아파트 사람들은 아침에 출근하면서 혹은 등교하면서 아파트 공터에 만들어진 식당 세트에서 이웃과 함께 밥을 먹는다. 파일럿 1회에는 서울 성북구 D아파트, 2회는 서울 방배동 L아파트, 3회는 군인 관사, 4회는 S대 외국인 아파트에서 조식 뷔페를 제공했다.

국민MC 박명수와 알베르토의 ‘케미’

2년 전 EBS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에 깜짝 출연했던 박명수가 MC로 다시 EBS에 나타났다. 박명수는 ‘국민MC 2인자’ 답게 높은 인지도로 주민들에게 환영받는다. 아파트 주민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재미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 자칫 다큐로 흘러갈 수 있는 프로그램 흐름에 개그를 던지면서 재미를 만든다.

영어, 중국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한 알베르토 몬디는 JTBC <비정상회담>에서 장수 패널로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다. 알베르토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다문화 가정이나 외국인 가정과 편하게 소통하기 위한 MC다. 또한 다정한 태도로 박명수의 ‘호통’을 완화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셰프는 EBS 장수 프로그램인 <최고의 요리비결>에 출연한 이혜정 요리연구가와 신효섭 셰프가 나온다. 이들은 주민들의 냉장고에 있던 재료로 한식과 양식을 넘나드는 요리를 해낸다. 파일럿 4회에서 신효섭 셰프는 채식주의자 주민을 위해 팔라펠을 만들어 제공하면서 다양한 주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예능? 착한 리얼 버라이어티 교양!

<조식포함 아파트>는 장르의 장벽이 파괴된 프로그램이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사실은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형식을 가지고 있다. 교양인지 예능인지 장르 구분이 어려운 ‘쇼양(Infortainment)’ 포맷은 관행으로 굳은지 오래다. 그중에서도 ‘쿡방(cook+broadcasting)’은 2015년 이후 열풍이 사그러드는 쇼양 포맷이라고 하지만, 후속 포맷을 생각하기에는 아직 성급하다는 평가다. 

이 프로그램에서 MC들은 주민들의 집을 방문해서 냉장고 속 재료를 얻는다. 주민들이 기부한 재료로 셰프가 요리를 하고, 그 음식을 주민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 이와 비슷한 다양한 예능 포맷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셰프가 스타의 냉장고 음식으로 요리 하는 <냉장고를 부탁해>, 일반인 집에 가서 한끼 밥을 얻어먹는 <한끼줍쇼>, 학교에 가서 청소년들의 아침밥을 책임졌던 <느낌표 하자하자! - 아침밥 먹자!> 등이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의 유사 프로그램과 다르다.  예능에는 ‘갈등’이 필요하다. 갈등이 있어야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다. 하지만 <조식포함 아파트>에는 ‘갈등’ 상황이 없다. 식재료를 찾으러 간 집  주민에게 홀대 당하는 장면이 없다. 재료를 얻을 때 참여를 하고 싶은 주민들에게만 찾아가기 때문이다. 재료가 적으면 적은대로 그만큼만의 요리를 해낼 뿐이다.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주민뿐만 아니라 시청자에게 이웃 간의 정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교양 프로그램에 가까운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배려심 넘치는 ‘착한’ 프로그램

최근 <한끼줍쇼>, <하룻밤만 재워줘> 등 아무런 사전 섭외 없이 일반인을 섭외하는 예능이 많아졌다. 리얼함을 보여주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불편하다. 무작정 찾아들어가 밥을 달라, 재워 달라 하는 모습이 민폐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식포함 아파트>는 불편하지 않다. <조식포함 아파트>는 조심스럽게 주민들에게 다가간다.

▲ 식재료 수거 동의 팻말은 아파트 주민을 배려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조식포함 아파트> 속 장치다. © EBS <조식포함 아파트>

아파트 주민들에게서 받은 식재료로 조식을 만들기 때문에 아파트 주민의 도움이 필수다. 제작진은 무작정 아파트 문을 두드려서 식재료를 얻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식재료를 직접 제공하고 싶은 집은 <조식포함 아파트> 팻말을 부착하도록 했다. MC들은 방문 허락 표시가 걸려있는 집만 방문한다. 방송 출연이 부담스러운 일반인을 배려하는 모습이 돋보이는 장치다. 아파트 단지 내에 ‘나눔 냉장고’를 설치해 방송 출연은 부담스럽지만, 이웃과 정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식재료를 기부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설정은 제작진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아파트 주민들에게 다가가는지 보여준다.

‘남은 음식물은 어떻게 처리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역시 센스 있는 제작진이었다. 잔반을 남기지 않은 사람에게는 커피를 제공하면서 잔반을 남기지 않도록 유도한다. 그럼에도 남은 잔반이 있겠지만 시청자가 보면서 불편함을 느낄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다.

그래서 정규방송이 언제라고요?

▲ <조식포함 아파트>는 바쁜 아침 주민들에게 맛있는 아침을 제공하면서 작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 EBS <조식포함 아파트>

보면서 훈훈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프로그램은 오랜만이다. 처음에는 ‘우리 집 냉장고 재료를 내놓고, 아파트 주민들과 밥을 먹는다.’ 라는 설정을 보고 아파트 주민들이 많이 참여할까 의문이 들었다. 개인주의가 보편화된 사회에 식재료를 내놓을까, 이웃과 함께 얼굴을 마주 보며 밥을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많은 주민들이 직접 식재료 제공에 참여하고, 이웃과 이야기하며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눔 냉장고 옆 우편함 속에 이웃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고 싶다는 쪽지를 보면서 사람들이 정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시청자 게시판은 벌써 “우리 아파트도 와주세요.”, “정규방송 해주세요.” 등 호평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걱정이 있다. 구성이 단순하기 때문에 회가 거듭할수록 지루해질 수 있다. 그래서 ‘캐릭터’와 ‘스토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제작진은 억지로 스토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인위적으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는 제작진의 노력이겠지만 이웃 간에 소통하는 모습을 더 보여준다면 더욱 따뜻한 프로그램이 될 것 같다.

파일럿 마지막 회에는 한계점을 느꼈는지 아침을 먹으며 이웃들끼리 친해질 수 있는 게임을 추가했다. 이런 구성은 이웃간의 정을 ‘강요’해 제작진이 애써 유지하려 했던 자연스러움을 해칠 우려가 있다. 그보다는 지방의 아파트 단지나 원룸촌, 기숙사 등 찾아가는 대상을 다양하게 확대하는 편이 나아보인다. 그곳에는 도시 아파트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색다른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러움을 해치지 않으면서 구성의 단순함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식포함 아파트>가 정규편성 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음식과 정을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편집 : 조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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