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다문화 가정

▲ 박진홍 기자

요즘 대학 기숙사는 ‘다문화 마을’이다. 한류 영향으로 교환학생이나 대학에서 운영하는 한국어교실에 참가하려는 외국 학생들이 몇 년 새 눈에 띄게 늘었다. 국적도 생김새도 각양각색이다.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한 대학 기숙사 직원으로 일할 때도 20여 나라였다. 외국 나갈 일 없는 한국 학생들에게는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외국 학생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다양한 문화도 배우고 외국어도 익힐 수 있으니 말이다. 그건 순진한 신입 직원의 착각이었다. 새 학기 첫날 아침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한 한국 학생이 잠옷 바람으로 내게 뛰어와 “베트남인 룸메이트를 바꿔달라”고 외쳤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그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그냥 싫어요. 차라리 서양인으로 배정해주세요.”

나를 찾아왔던 한국 학생처럼 132년 전 일본에도 서양인을 좋아한 사람이 있었다.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시사신보>에 ‘나쁜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마찬가지로 나쁜 인상을 주므로 관계를 끊자’고 썼다. ‘나쁜 친구’는 청과 조선 같은 아시아 나라들, 반대는 유럽 국가다. 후진적 유교문화권에서 벗어나 서구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그들과 같은 문화권에 들어가자는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후 일본은 해군·산업·은행 제도는 영국, 육군은 독일, 예술·음식은 프랑스, 건축은 이탈리아에서 가져와 발전시켰다. 유키치는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일본에서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며 만엔짜리 지폐에 얼굴이 그려질 정도로 추앙받고 있다.

▲ 아시아 국가들을 '나쁜 친구'로 묘사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는 여전히 만엔짜리 지폐에 앉아 있다. ⓒ 박진홍

친일파들이 해방 후에도 통치해온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문명을 서열화했다. 빈곤 탈출과 경제 발전을 도와준 부유한 나라 미국을 ‘좋은 친구’로 두고 의식주와 대중문화, 사회 제도를 열심히 모방했다. 그 결과 영어 잘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대접받고, 흰 피부에 부리부리한 눈과 오뚝한 코를 가진 사람은 미남 미녀로 꼽힌다. 반면 경제성장을 이룬 뒤 3D 기피업종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들어온 중국·동남아인들은 ‘외노자’라 부르며 무시한다. 그들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이나 까무잡잡한 외모는 개그 소재로 쓰인다. 따지고 보면 미국인이나 동남아인이나 나라 경제에 도움을 준 건 매한가지인데도, 우리는 경제력 차이를 이유로 그들을 차별대우한다. 외국인을 백인과 백인 아닌 사람으로 나누는 ‘한국식 탈아입구’는 이렇게 우리 의식 속에 뿌리박혀 있다.

‘한국식 탈아입구’가 불러온 ‘나쁜 친구’ 차별대우는 경기가 불황에 빠지면서 더 심해졌다. IMF 이후 생겨난 무한경쟁, 일등제일주의로 쌓인 분노는 엉뚱하게도 불합리를 만들고 지키는 승자가 아닌, 자신과 비슷하거나 나약해 보이는 약자들을 향했다. 프랑스 사상가 프란츠 파농이 ‘수평폭력’이라 설명하는 이 현상 때문에 백인 아닌 이주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대부분 공장이나 음식점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일자리 빼앗아가는 놈들’ ‘흉악범죄자’ 등 갖은 모욕을 듣는다. 이들은 사업주가 전적으로 고용권을 갖는 ‘고용허가제’ 탓에 욕을 먹어도, 험한 일을 시켜도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기 위해 무조건 참아야 한다. 기숙사 방을 바꿔 준 베트남 학생처럼 이주노동자와 생김새가 비슷한 관광객이나 유학생들이 난데없는 수모를 당해도 피해를 구제받을 방법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인종차별금지법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제도의 허점과 미비가 외국인을 화풀이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2015년 여성가족부가 성인 4천 명에게 물어봤더니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 비율은 31.8%였다. 같은 질문에 답한 16개국 국민 중 우리보다 더 부정적인 국가는 일본(36.3%) 싱가포르(35.8%) 러시아(32.3%)뿐이었다. 한일 양국 수치가 비슷한 건 우연이 아니다. 탈아입구론을 바탕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제국은 아시아 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어 수탈, 폭력, 살인 등 수많은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에서는 위인인 후쿠자와 유키치가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존경은커녕 증오와 비아냥을 듣는 이유다. 우리는 일제로부터 36년간 당한 고통을 아직도 다 씻어내지 못했다. 그런 나라에서 일제와 유사한 논리를 바탕으로 백인 아닌 외국인들에게 인종차별이라는 씻을 수 없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고용허가제 재정비와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을 출발선 삼아 ‘한국식 탈아입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론이 다문화 가정을 반짝 조명하는 ‘가정의 달’ 5월도 그냥 지나가고 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안윤석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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