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있는 서재] 박진홍

‘띠링- 띠링-’ 적막한 편집국을 깨우는 차임벨 소리가 모니터에서 흘러나왔다. 통신사 속보가 들어오는 소리였다. 종합일간지 문화부에서 속보 받을 일이 뭐가 있나? 사회부는 또 바빠지겠군. 무시하고 읽던 <칼의 노래>나 마저 읽기로 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니. 언제 봐도 기가 막힌 리드다. ‘꽃이’로 할지 ‘꽃은’으로 할지 몇 달을 고민했다고 하던가? 김훈도 문화부 기자였다고 하던데. 조사 하나에 집착하는 게 꼭 우리 부장 같다.

“야! 넌 도대체 뭐 하는 새끼야?”

저 양반은 절대 양반은 못 된다. 출근 인사를 저렇게 욕으로 하는 우리 부장 같은 인사도 흔치 않을 거다.

“오셨습니까?”
“뭘 ‘오셨습니까’야? 속보창 못 봤냐? 기자라는 놈이 쳐 앉아서 한가하게 책이나 읽고 말이야. 오늘도 물먹으면 뒤질 줄 알아!”

부장은 한때 ‘일간지의 꽃’이라는 사회부 에이스였는데, 별명이 돈키호테였다. 기삿거리가 있으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었다. 그 덕분에 법조를 출입할 때는 ‘스폰서 검사’ 같은 특종도 빵빵 터트렸다. 하지만 차장이라는 직함을 얻은 뒤 꼬장꼬장한 성격은 오히려 독이 됐다. 정치권과 연이 닿아있는 실세 검사장 성추행 의혹을 ‘조지다’가 문화부로 좌천당했다. 언론사 차장쯤 되면 생긴다는 ‘유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만 조지라”는 사회부장 말을 들었다면 지금 사회부장은 우리 부장이었을 텐데. 나는 부장 없는 평화로운 문화부를 상상하며 속보창을 열었다.

▲ 세상의 부정과 비리를 도려내는 데 열중했던 부장의 별명은 돈키호테였다. ⓒ flickr

‘국민가수 임형준, 성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1보).’

제목을 읽자마자 전화기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문화부 책상에 놓인 전화기 8대가 동시에 울리는 광경은 3년 만에 처음 봤다. 무시하고 관할 서초서에 나가 있는 사회부 수습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중이었다. 이러면 내가 직접 가는 수밖에 없다. 운동화로 갈아 신고 편집국을 뛰쳐나왔다. 임형준이 성폭행이라니.

“기사님, 서초서요.”

택시 안에서 3년 전 썼던 임형준 인터뷰 기사를 열었다. 수습 딱지를 떼고 부서 배치를 받은 지 일주일 만에 나간 인터뷰 자리였다. 물론 기자 출입처 배정은 부장 권한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30년차 가수 인터뷰를 신참이 맡는 건 실례가 아닌가? 너무 젊은 기자가 왔다고 무시하는 건 아닐까? 오만가지 걱정을 하면서 임형준의 작업실이 있는 방배동으로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임형준이 누군가? 거의 모든 언론사가 ‘노래하는 시인’, ‘한국의 밥 딜런’ 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대가 아닌가? 30년 동안 곡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가사는 모두 본인이 썼다고 한다. 솔직히 인터뷰 전에는 꼬장꼬장한 우리 부장이 미간을 와이파이 기호 모양으로 찡그리고 있는 표정을 예상했다. 땀 흘리며 작업실 문을 연 내게 지하실과는 안 어울리는 해맑은 표정으로 “아이고 기자님 밖이 많이 더운가 봐요”라고 말을 건네기 전까지는. 그런 사람이 성폭행이라니!

▲ '한국의 밥 딜런' 임형준의 성폭행 소식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 flickr

서초서에 도착했다. 브리핑실에 파묻혀있는 사회부 수습 뒷덜미를 잡아 겨우 꺼냈다. 피해자는 18세 여성 가수 지망생. 미성년자였다. 구체적 정황도 있었다. 석 달 전 임형준이 가사 쓰는 법을 알려준다며 방배동 연습실로 유인했다는 게 피해자 진술이었다. 정확히는 수사중인 경찰의 발표 내용이었다. 이 정도면 기사 써야겠는데. 바로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했다.

“임형준은?”
“조사 받고 나간 뒤로 행방을 아무도 모른답니다.”
“장난하나. 크로스 체크도 안 하고?”
“부장, 근데 경찰 발표잖아요. 일단 기사 내죠?”
“이런 미친놈이. 3년차라는 게 사회부 수습이랑 똑같은 짓 하고 있어. 임형준 따 와.”

이런 억지를 부릴 때는 정말 어이가 없다. ‘경찰에 따르면’으로 쓰면 되는 문제 아닌가. 문화부가 안 써도 사회부에서 속보를 낼 거다. 다른 일간지는 모두 인터넷판으로 그렇게 속보를 냈다. 이미 물을 먹었다. 물 먹으면 뒤진다고 한 게 누군데!

“기사님, 방배동이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문화부 기자가 연습실 앞에서 ‘뻗치기’라니. 나는 택시 안에서 3년 전 인터뷰 기사를 다시 열었다. ‘임형준, “노래 값 싸다고 쉽게 생각해선 안 돼”’ 제목부터 초짜 냄새가 난다. 그러고 보니 부장은 왜 그때는 15자 이내로 제목 줄이라는 이야기를 안 했을까?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그러다 그만, 내 손은 얼어버렸다.

“노래는 정말 값이 싸죠. 목소리만 있으면 누구나 내 생각, 내 감정을 전할 수 있으니까요. 단 마이크의 도움을 받을 뿐이죠. 그렇다고 아무리 돈이 최고인 사회라지만, 노래를 값 싸다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돼요. 파급력이 엄청나거든요. 별 뜻도 의미도 없는 외계어 같은 노랫말을 아이들이 따라 부르는 건 정말 끔찍합니다. 후크송이 아이들 뇌까지 외계인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임형준이 인터뷰에서 내게 말해 준 ‘노래론’이었다. 그는 예순이 넘은 지금도 밤새 가사를 쓰고 고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기사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이런 말도 했다.

“기자님들도 하는 일이 비슷하지 않나요? 펜의 도움을 받을 뿐이죠. 아, 요즘은 노트북인가? 하하하.”

나는 그날 방배동 길바닥에서 밤을 새웠고, 다음날 조간신문 1면을 장식한 제목은 ‘임형준, 미성년자 성폭행’이었다, 우리만 빼고. 제목에 한 단어를 넣을지 말지를 두고 우리 부장과 사회부장이 회의 도중 멱살을 잡았다는 말은 임형준이 한 달 뒤 무혐의 처분을 받을 때쯤 들었다. 우리가 선택한 제목은 ‘가수 임형준,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이다. 의혹. 한 단어를 기어코 넣은 부장 고집 덕분에 우리는 오보를 피했고, 그 단어를 본 임형준은 내게 단독 인터뷰를 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노래도 기사도 정말 값이 싸다.

 

* 이 ‘콩트’는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인 박진홍이 지난 9일 전국에서 662명이 참가한 세명대 민송백일장의 대학∙일반부 산문 부문에서 금상을 받은 글입니다.


글쓰기가 언론인의 영역이라면 글짓기는 소설가의 영토입니다. 있는 사실을 쓰는 것이 글쓰기라면 없는 것을 지어내는 게 글짓기입니다. 그러나 언론인도 소설가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갖춰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단비뉴스>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서재’ 개관을 기념해 이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소설을 읽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첨삭을 거쳐 이곳에 실립니다. (이봉수)

편집 : 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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