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대한항공 조현민 등의 ‘갑질’은) 해당 기업이나 그 특정인에게만 데미지(손상)를 주는 게 아닙니다. 오너가 있는 대기업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악화시킵니다. 반기업정서는 불필요한 규제를 만들고, 시장친화적이지 않은 정책을 만들어 내게 되죠. 경우에 따라서는 (연기금이) ‘그런 기업에는 우리 투자 안 한다’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행태가 우리 사회와 기업, 투자 커뮤니티에서 수용이 안 된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나올 필요가 있습니다.”

초대 금융위원장과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69) 연세대 석좌교수가 26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 대한항공 대주주 일가의 갑질 사건을 비판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주식투자를 통해 재벌기업들의 지분을 상당량 확보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통해 지배구조개선과 사회책임경영을 이끌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기금 주주권 행사로 지배구조개혁 이끌어야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역대 최장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전 전 위원장은 재임 시절 투자 결정의 기준으로 환경(Environment),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 지배구조(Governance)를 도입했다고 소개했다.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인가, 법과 윤리의 준수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기업인가, 투명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기업인가를 따져서 투자하기로 했다는 뜻이다. 그는 앞으로도 이런 기준에 따라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단, 기금운용에 독립성이 없다면 정부 입맛에 맞지 않는 기업을 손보는 수단으로 주주권이 악용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국민연금이 E.S.G 평가 기준에 따라 투자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SBSCNBC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건에서 국민연금이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승계를 지원하는 데 동원됐던 사건과 관련해 전 전 위원장은 “그런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도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관련 부처 차관들과 노사단체, 소비자단체 대표 등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를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처럼 각계에서 추천한 금융전문가로 재구성해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연금 투자의사 결정에서 정치권, 정부 입김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기금운용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험료 더 내고 연금 더 받는 방향으로 가야

약 600조원의 운용자산을 가진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세계 3대 연기금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 전 금융위원장은 기금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가입자의 노후에 실질적 도움이 될 만한 연금을 지급하려면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의 연금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전 전 위원장은 정치권과 정부가 국민을 설득해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개혁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 SBSCNBC

현재 국민연금 월평균 수령액은 약 40만 원으로 노후 준비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우리나라 연금보험료가 소득의 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9.6%)의 절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 전 금융위원장은 “더 받으려면 더 내야 한다는 것을 정치권과 정부가 솔직하게 밝히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태계 금융인의 자녀교육은 “남다른 질문을 하라”

미국 미시간 주립대 교수와 세계은행(IBRD)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내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경제부총리특보로 국내 활동을 시작한 전 전 금융위원장은 이날 방송에서 유태계 금융인들의 가정교육을 소개하기도 했다. 유태인 가정에서는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성적이나 시험 결과 등을 일절 묻지 않고 ‘오늘 학교에서 네가 남다른 질문을 어떤 걸 했느냐’고 물어본다는 것이다. 그는 “남과 다른 생각, 자기만의 특이한 강점을 길러주는 유태인 교육이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 전 전 위원장은 남다른 질문을 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태인 가정교육을 소개했다. ⓒ SBSCNBC

전 전 위원장은 또 중학교 입시에 떨어진 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진학, ‘역대 최연소 고교생’이 됐으나 병에 걸려 6년 만에 졸업한 사연과 화이부동(和而不同: 화합하지만 소신을 굽히진 않음)의 원칙으로 경제부총리 4명의 특별보좌관을 지냈던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경제방송 SBSCNBC는 2월 22일부터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 2018년 시즌 방송을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11시부터 1시간 동안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영상과 주요 내용을 싣는다. (편집자)

편집 : 나혜인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