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대학입시’ 공론화 비판, ‘신고리’와 판박이

16일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가 ‘대학입시제도 개편 공론화 추진방안’을 의결했다. 지난 12일 교육부가 「대학입시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을 국가교육회의로 보내온 데 따른 후속조처다. 국가교육회의는 ‘국민참여형 공론화’의 결과를 반영한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을 8월초까지 교육부에 제안할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운영되는 것이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특위)’와 ‘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다. 공론화위 내 공론화 전문가들은 공론화 결과를 특위에 제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특위가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국가 대계, 시민 결정 안 돼?

공론화위 하면 지난해 여름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두고 진행된 공론화위가 떠오른다. 당시 <조선일보>는 공론화위가 출범하기도 전에 전문가가 아닌 시민에게 ‘국가 에너지 대계’를 맡긴다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공론화위 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조선>은 시민참여단의 한계를 지적했다. 지난해 6월 28일에는 ‘신고리 5·6호기 운명, 전문가 아닌 시민배심원단에 맡긴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고, 10월18일에는 ‘참여단 상당수 원전 기초자료도 안 읽고 와… 몇 명이 토론 주도’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 4월 17일자 대입제도 공론화 관련 기사. ⓒ 황금빛

‘국가 백년대계’인 교육에서도 <조선>은 공론화위에 우려를 표했다. 국가교육회의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추진 방안 의결 다음 날인 17일 <조선>은 ‘대입 개편안 ‘폭탄 돌리기’’라는 기사에서 처음부터 과거 신고리 공론화위를 언급한다. ‘'2022학년도 대입 제도 개편안'을 신고리 5·6호기처럼 공론화 방식으로 결정할 것’이라며 ‘그러나 단순히 건설 여부를 결정한 신고리 공론화 과정과 달리 대입 제도는 정시·수시 선호 여부 등 학생과 학부모가 처한 형편에 따라 이해관계가 복잡해 석 달여 만에 공정한 의사 결정을 도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 4월 17일자 <조선> 기사 ‘대입 개편안 ‘폭탄 돌리기’’. ⓒ <조선일보>


참여민주주의에 거부감

전문가가 아닌 시민에게 정책 결정을 맡길 수 없다고 주장하는 <조선>의 논거는 신고리 공론화위 때가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였다면, 이번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안에 공통으로 드러나는 조선의 비판 논조에는 시민의 의견을 국가 정책에 폭넓게 반영하려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의도를 꺾으려는 의지가 드러나고 나아가 참여민주주의 제도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언론들도 문제를 제기하고 우려를 전했지만, 그 강도는 <조선>에 훨씬 못 미쳤다. 같은 날 <중앙>이 ‘교육부→교육회의→공론화위… 대입개편안 ‘하청에 재하청’’이라고 비판했지만, 다른 주요 신문들은 적어도 헤드라인 기사에서는 중립적 논조를 보였다. <동아>는 ‘대입제도 온라인 의견 받고 권역별 국민토론회… 8월초 결론’이라 보도했고, <한겨레>는 ‘대입제도 5~6개 모형 만들어 7월부터 국민 토론’이란 제목을 달았다.


‘무책임한 정부’ ‘시민 갈등 우려’ 프레임

보수언론들은 대개 공론화가 갈등을 빚을 것으로 보았지만 특히 <조선>은 ‘세력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조선>은 ’이해관계자에 따라 견해차가 큰 대입 제도를 공론화 과정으로 결정하는 것이 옳으냐는 지적도 있다’며 ‘여론 수렴을 하더라도 결국은 세(勢) 싸움 이상이 되기 힘든 상황’이라는 안선회 중부대 교수의 의견을 전했다. 같은 날 <한겨레>도 같은 교수의 말을 인용해 ‘구체적인 공론화 방법 등이 사실상 제시되지 않았다’며 ‘최소한 세 개 이상의 전문기관 국민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같은 교수의 발언이 매체에 따라 그 강도가 달리 인용된 것이다.
 

▲ <조선> 기사 속 안선회 중부대 교수 인터뷰. ⓒ <조선일보>
▲ <한겨레> 기사 속 안선회 중부대 교수 인터뷰. ⓒ <한겨레>

<조선>은 또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가 대입 제도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하지 않고 사실상 뒤로 숨어버린 것’이라며 ‘특위와 공론화위 등으로 넘기는 하청, 재하청으로 대입 제도를 정하는 구조라는 비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전했다. 정부가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이다. 전문가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시민의 지적 수준과 토론 능력 얕봐

이 기사 또한 기시감이 든다. 신고리 공론화위와 관련해서도 <조선>은 정부가 공사 중단 여부를 공론화위에 맡기고, 공론화위는 또 여론조사회사에 공론조사 용역을 맡겼다며 비판했다. <조선>은 지난해 8월 11일자에 ‘원전 공론화 全과정을 용역업체에 떠넘긴 공론화委’라고 비판했다. <조선>은 공론화위 구성도 문제 삼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공론화위 인선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공론화위 위원 7명의 명단을 공개할지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조선>은 특위 위원장이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지냈다며, 그런 공론화위와 특위가 대입을 결정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선>은 신고리 공론화위를 비판할 때도(2017. 7. 25일자) 에너지 전문가가 한 명도 없고, 위원장이 노무현 정부에서 대법관을 지낸 진보 성향 변호사라는 점을 부각시킨 적이 있다.

이처럼 <조선>은 지난해 신고리 공론화위 출범 전에 했던 방식으로 현재 대입 제도 개편 공론화에도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시민이 국가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뿐 아니라 시민의 지적 수준과 토론 능력을 얕보는 것이다. 민주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려는 정부의 노력에는 무책임하다는 프레임을 덧씌운다.


참여민주주의 외면하는 ‘어깃장 보도’는 빗나간다

신고리 공론화위는, <조선>이 우려한 것과 반대로, 원전 건설 재개 결정을 내렸다. 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참여단은 건설을 재개하자는 쪽 논리로 기울었는데, 결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조선>의 선입관이 어긋났음을 입증했다. 전문지식과 정보가 제공되고 공론장이 제대로 마련되면 시민의 정책결정이 합리적일 가능성을 보여준 참여민주주의의 현장이었던 셈이다. 2016년 촛불 혁명 이후 시민의 참여민주주의 열망이 상당히 고조된 점을 언론이 간과한다면 그들의 ‘어깃장 보도’는 빗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편집자 : 안윤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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