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자유민주주의 논란 ②

국회 헌법개정특위자문위원회는 1월 헌법개정안 초안을 발표했다. 초안의 전문(前文)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이 빠지고, 헌법 제4조에서 통일정책의 전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민주적 기본질서’로 바꾼 것으로 드러나면서 ‘자유민주주의 vs 민주주의’ 논란이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도 2월 당 개헌안 중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민주적 기본질서'로 고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네 시간만에 태도를 바꿔 ‘자유’를 뺀다는 것은 착오라고 밝혔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사회주의 개헌을 하자는 거냐”며 진의를 밝히라고 공격했다. 개헌정국의 핵심이슈로 떠오른 자유민주주의냐 민주주의냐 논쟁의 연원과 찬반 견해, 그리고 그 배경은 무엇인지 세 편의 칼럼으로 짚어본다. (편집자)

▲ 황진우 기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서로 유사한 개념 같지만, 의미가 다른 용어다. ‘자유주의’는 스스로 직업이나 종교 등을 선택하고, 권리와 책임을 갖고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전체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권익을 더 중시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제도를 말한다. ‘자유주의’가 이념이라면 ‘민주주의’는 제도다. 자유와 민주,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포함하는 관계가 아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해 만들어진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자유시장경제 체제와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민주주의의 한 형태다.

여당의 개헌안 초안이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했다가 되살린 데 이어 한국사 교과 집필기준 시안에서도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로만 기술된 것이 드러나 ‘자유민주주의’냐 ‘민주주의’냐가 개헌 정국의 핵심 이슈로 등장했다.

▲ ‘자유주의’가 이념이라면 ‘민주주의’는 제도다. ⓒ pixabay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이다. 자유민주주의는 1948년 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함축해 보여주는 핵심 개념이다. 해방 후, 우리는 좌파와 우파 간 치열한 정치투쟁을 거쳐 이승만 대통령 중심의 우파가 승리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내건 정부가 출범했다. 이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장점을 조합해 적어도 경제성장 부문에서는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 북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지금까지 그 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인민이 계급투쟁을 벌여 자본주의를 종식하고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한다는 목표로 출발했으나, 인민이 아닌 공산당 독재로 귀결되고 말았다. 개인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중시해 생산수단의 공유화를 핵심으로 한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채택했지만, 그 결과는 인민을 굶기는 최악의 경제난을 초래했다.

남북 간에 벌여온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간 대결에서 국민의 ‘자유’를 지키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온 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임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다. 분단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북의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존속하는 한 ‘자유민주주의’를 버릴 수 없다는 시각이 남한에서는 주류를 이룬다. ‘인민’을 굶기지 않고 잘 살게 할 수 있는 체제로는, 아직은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능가하는 제도는 없어 보인다.

물론 자유민주주의도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자유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생긴 사회적 불평등이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자유’를 내걸어 정권연장을 시도하고 거꾸로 국민의 자유를 억누르고 짓밟은 어두운 역사도 있었다. 갈수록 심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나 양극화 문제는 지금 대처를 한다고 하지만 쉽게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박정희의 유신체제와 전두환 정권의 폭압정치가 자유주의 정신으로 저항한 국민의 힘으로 무너지긴 했지만, 그 어둡고 음습한 그늘은 최근 보수정권에까지 드리워졌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초래한 부작용과 일부 정권에 의한 자유의 오용과 악용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일부 독재정권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자유를 오용하고 악용하고 유린했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의 깃발 자체를 내릴 수는 없다.

아직 분단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를 삭제하면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와 국가의 지향점이 불투명해진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는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라고만 표현하면 오독(誤讀)의 위험성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에는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등 정치제도로서 민주주의도 있고, ‘숙의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등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절차적 방식으로서 민주주의도 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원내대변인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보다 민주적 기본질서가 더 넓은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저마다 자기들이 지향하는 바를 명시해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포괄적인 의미의 민주주의를 내거는 것은 국가적 지향점을 모호하게 할 수 있다. 오히려 지금 인권상황이 최악인 북한조차도 ‘인민민주주의’라며 민주주의를 내걸고 있는 것을 보면, 왜 ‘자유민주주의’를 존속시켜 나가야 하는지 분명해 진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를 지향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지금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은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지나친 자유가 불러온 불평등과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 문제는 복지국가 체제를 한층 강화하는 것으로 적극 대처해 나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킨다면서 여전히 국민의 자유를 유린하는 블랙리스트 같은 망령은 이번을 끝으로 다시는 발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부작용과 문제점을 해소하면서도 지켜나가야 할 체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사회발전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자유민주주의보다  좋은 제도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문제가 있다고 지울 대상이 아니라 보완해서 지켜 나가야 할 가치다.


편집 : 조현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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