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자유민주주의 논란 ①

국회 헌법개정특위자문위원회는 1월 헌법개정안 초안을 발표했다. 초안의 전문(前文)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이 빠지고, 헌법 제4조에서 통일정책의 전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민주적 기본질서’로 바꾼 것으로 드러나면서 ‘자유민주주의 vs 민주주의’ 논란이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도 2월 당 개헌안 중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민주적 기본질서'로 고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네 시간만에 태도를 바꿔 ‘자유’를 뺀다는 것은 착오라고 밝혔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사회주의 개헌을 하자는 거냐”며 진의를 밝히라고 공격했다. 개헌정국의 핵심이슈로 떠오른 자유민주주의냐 민주주의냐 논쟁의 연원과 찬반 견해, 그리고 그 배경은 무엇인지 세 편의 칼럼으로 짚어본다. (편집자)

▲ 박진홍 기자

옛 동독‧북베트남‧남예멘과 북한에는 공통점이 있다. 공식 국호에 모두 ’민주’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독일민주공화국, 베트남민주공화국, 예멘인민민주주의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그것이다. 모두 냉전 시대 분단국가들로, 자유‧공정선거를 제대로 치르지 않았던 공산주의 독재국가라는 공통점도 있다. 민주주의를 하지도 않으면서 왜 나라 이름에 ‘민주’를 내세운 걸까? 유시민 작가는 ‘이름표라도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그런 것이 진짜 민주주의라고 믿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 나라들이 이름표라도 '민주’를 달고 싶어 한다면, 한국의 보수세력은 이름표가 아니라 ‘자유’라는 이름에 목숨을 건다. 그들에게 자유민주주의란 인민민주주의를 물리치고 얻은, 생명처럼 소중한 훈장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에서 선언한 것처럼 냉전 끝에 자유민주주의는 승리했다.

▲ 국호에 '민주'를 넣은 냉전 시대 분단국가들과, '자유'에 목숨 거는 한국 보수세력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 JTBC

우리나라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 냉전의 승자 편에 서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피를 흘렸고, 총부리를 맞대고 수십 년을 맞서 지켜온 ‘자유’다. 그런 자유를 헌법에서,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교과서에서 빼는 건 자유한국당 대변인의 말처럼 ‘해방 이후 피땀 흘려 건설해온 나라의 근본을 허무는’ 행위다.

헌법과 교과서에서 ‘자유’가 빠지면 정말 나라가 무너지는 걸까? 아니다. 해방 직후 만든 제헌 헌법에는 ‘자유민주적’이라는 표현이 없었다. 치열한 좌우대결 끝에 정부를 세우고, 북쪽의 ‘인민민주주의’ 정권과 직접 대치하고 있을 때도 특별히 ‘자유’에 집착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주의 여러 제도’라고 범위를 폭넓게 잡았다.

한국 보수세력이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용어를 넣은 것은 1972년 유신헌법부터다.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한 유신체제를 띄우면서 내건 ‘조국통일과 자유민주주의 체제 공고화’란 명분을 헌법에 담았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적화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더니 거꾸로 자유의 종말을 불러 왔다. 집회‧시위‧결사‧언론‧출판의 자유를 억누르고, 국회를 해산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유와 민주를 짓밟은 것이다. 자유가 빠져서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이름으로 나라를 허물어버린 것이다. 그런 독재자라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되레 ‘자유’를 빼야 하는 것 아닌가?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대신 '민주주의 여러 제도'라 표현했던 제헌 헌법. 헌법에 '자유'가 등장한 순간 대한민국에서 자유는 사라졌다. ⓒ 전쟁기념관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히 인민민주주의를 막기 위한 개념이 아니다. 자유‧권리‧생명을 보장하고 기회‧법‧절차의 평등을 중시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정치체제다. 지난 9년간 이 나라를 끌어온 보수정권은 자유민주적이었다고 할 수 없다.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용산 철거민과 백남기 농민의 저항권을 짓밟았다. 사상 최대 가계 부채로 아우성치는 서민들에게 ‘빚 더 내서 집 사라’로 압박했고, 정보기관을 동원한 여론몰이로 공정선거를 방해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간 대결은 이미 승자가 판명 났는데 아직도 종북몰이로 ‘늑대야’를 외친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민주주의를 지킨다며 공산주의자를 탄압하면 알맹이 빠진 민주주의가 된다”고 했다. 지금 보수진영에는 ‘자유’와 ‘민주’는 사라지고 이름표만 남았다.

알맹이는 가고 껍데기만 남은 자유라면 그렇게 목매고 지킬 가치가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며 자유를 짓밟아 온 사람들이 지키겠다는 자유라면, 헌법이든 교과서든 남김없이 빼는 것이 옳다. 자기들 개헌안에서 자유를 뺏다가 도로 넣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 개헌으로 오해받을까 걱정하는 모양이다.

자유를 짓밟아 온 사람들이 자유를 계속 짓누르기 위해 자유라는 이름에 집착하는 건가? 자유민주주의가 만들어 낸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하려면, 색깔론 딱지로 전락한 ‘자유’라는 이름표를 과감하게 떼야 한다. 굳이 지켜야겠다면, 차라리 나라 이름도 ‘대한자유민주주의공화국’으로 바꿀 것을 추천한다.


편집 :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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