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위안부’

▲ 윤연정 기자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를 벌한다. 이때 제우스의 명을 받아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바위로 무자비하게 끌고 간 크라투스라는 신과 비아라는 여신은 권력과 폭력의 어원이다. 남 사정을 헤아릴 줄 모르는 권력은 폭력과 짝이 되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12.28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중심 원칙’을 배제한 채 국가가 중심이 돼 체결했다. ‘진정한 사죄’ 없이 10만 엔을 주고받고 두 국가가 사실상 이면합의인 비공식 합의를 한 것은 권력행사의 정당성을 잃어버린 ‘폭력’의 결과물이다. 한나 아렌트는 <폭력의 세기>에서 정치공동체의 ‘위임’을 통해 집단적 힘을 행사함으로써 실재하는 능력을 ‘권력’으로 규정한다. 권력이 정당성을 상실하고 오직 수단으로 존재한다면 이는 폭력과 다를 게 없다.

▲ "용서는 영원한 결과이고 사과는 영원한 과정입니다." 12.28 합의에 반대하는 피켓 내용 ⓒ flickr

문재인 정권이 이런 오류를 근절하려면 임기 내 12.28 위안부 합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번에 ‘국가의 외교 문제 때문에 상황이 어렵다’며 재협상을 피한다면 똑같은 폭력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가하는 것이다. 문 정권은 시민 다수가 권위를 실어준 정부다. 권위가 내는 ‘힘’으로 12.28 합의로 실추된 권력의 정당성을 되찾아야 한다.

정부는 일본의 자발적 사죄에 12.28 합의 존속 여부가 달려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외교 관례를 깨고 전 정권의 잘못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문 정권 시기뿐이다. 이때 하지 못하면 위안부 문제는 이번 정권을 계기로 고착된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촛불 혁명으로 지지받던 문 정권도 ‘12.28 합의’의 합법성을 인정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때 기존 합의를 지키라는 아베 일본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그분들의 상처가 아물 때 해결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권력과 폭력의 신 크라투스와 비아는 프로메테우스에게 평생 독수리한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내렸다. 식민지 시대의 폭력은 가해자가 진심 어린 사죄를 한 적이 없기에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더욱 가혹한 평생의 형벌이었다. 폭력적인 권력행사를 잘못된 합의에 기대어 푸는 것은 성폭력범의 ‘2차 폭력’이나 다름없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안윤석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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