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것투성이다. 처음 농장에 발을 들인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여전히 작물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도시에서도 흔히 먹는 나물이라는데 나에겐 처음 보는 풀이다. 한번은 내가 심은 옥수수가 싹을 틔워 기쁜 마음으로 말했다. “벌써 싹이 올라왔네요. 밭에는 언제 심죠?” 웬걸, 옥수수가 아니라 고추란다. 농장에서는 이런 무능감을 자주 겪는다. 한 시간을 낑낑대야 끝낼 수 있는 일을 십분만에 해치워버리는 베테랑 농부를 보면 자괴감마저 느껴진다. ‘나도 어디 가서 똑똑하다
억눌렸던 일상에 봄볕이 내리쬔다. 신종 코로나19는 세계를 얼어붙게 했지만 오는 봄을 막지는 못했다. 전국에서 꽃망울이 터지며 봄의 시작을 알린다. 내가 공부하는 학교 곳곳에도 연초록 새싹이 터져 나온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을 맞는 이 느낌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활기와 희망과 행복감. 추웠던 겨울은 어느새 잊고 마음도 봄눈처럼 녹아 내린다. 봄은 늘 이렇게 희망과 함께 온다. 농촌에서는 봄이 오면 씨를 뿌린다. 주말인 지난 10일 다시 충북 제천시 청전동에 있는 솔휘농장을 찾아가 옥
지역 상생 이끄는 ‘삶기술학교’ 청년들시간여행 웹드라마의 배경이 논두렁이라면? 서해안 백사장에서 요가 수업을 열고, 농촌 마을에서 제빵 기술을 배운다면? 작년 12월 충남 서천군 삶기술학교 한 달 살기 참가자들은 농촌을 배경으로 웹드라마 3부작을 찍었다. 농촌에 도시 청년들이 내려와 창업한 삶기술학교의 단기 체험 프로그램 일부다. 서천군은 몇 년째 소멸 위기 지역으로 지목된 고령화 농촌 지역이다. '지역은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이라는 인식을 바꾸는 신개념이 등장했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조희정 연구원은 “지역은 ‘공간’을
외적을 막기 위해 흙이나 돌로 높게 쌓아 올리던 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긴 담장 형태의 성(wall)과, 유럽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대저택 형태의 성채(castle)가 그것이다. 동양에서는 거의 모든 성이 특정 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긴 담장 형태였던 반면, 중세 유럽에서는 봉건영주나 귀족이 자신이 거주하는 저택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형 성채가 일반적이었다. 한양도성이나 남한산성처럼 담장 형태의 성이 전부인 우리나라에 성채 모양 유럽형 성이 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금리 바닷가에 있는 ‘매미성’이다
오래전부터 농사를 동경했다. 가난한 소작농의 손자였지만 할아버지를 도우며 흙을 만지던 경험은, 자연이야말로 자유로움 그 자체라는 사실을 내 무의식에 심어주었다. ‘자유로운 삶’은 내 인생의 목표다. 자유롭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억압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유는 행복을 느끼게 하지만 억압은 무기력하게 만든다. 생명과 소통하지 못하게 하는 아스팔트 길이 억압이라면 하늘과 땅을 함께 만나는 흙길은 자유다. 회사에서 상사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억압이라면 오롯이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노동은 자유다.
“한국 교육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은 ‘능력주의’입니다. 학교에서부터 자기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다는 원리를 가르치고, 시험을 통해 서열 높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능력으로 여기며, 그에 맞춰 지위와 재화를 얻는 게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보는 거죠. 그러나 여기서 능력이란 각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소질과 소양, 또는 천재성이라기보다는 한국 시험 체제에 잘 적응하는 것을 말하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거의 비례합니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사회를 정의롭고 공정하게 만들기보다 불의를 정당화, 영속화하는 논리로 쓰이고 있습니다.”김누리
“부산진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차는 바다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하여 몸을 뒤로 뻗대었다. 초량역에서 본역까지는 거의 한 걸음을 재듯 늑장을 부렸다. (중략) 끝의 끝, 막다른 끝, 거기서는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는,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허무의 공간’으로 떨어지고 마는……” 김동리가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간 예술인들을 소재로 한 단편 <밀다원 시대>에서 부산을 묘사한 대목이다. 부산은 6·25전쟁 때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오면서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였다. 서울과 이북 등에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 앉았다. 이것이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일제강점기 항구도시 군산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는 이렇게 시작한다. 전라북도의 북서쪽에 치우쳐 있는 군산은 금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드넓은 호남평야를 배후에 둔, 내륙 곡창지대와 서해의 풍성한 어장을 모두 갖춘 곳이다. 농수산 자원이 풍부해
“최근 각 지방대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교육과정 개편, 학과 구조조정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 효과를 떠나 지방대의 각자도생은 불가능합니다. 학령인구(만 6~21세)가 감소해 대학 입학생 수가 급격히 줄고 있고, 재정이 풍부한 수도권 대학과의 격차도 더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지방대의 개별 노력으로만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방대의 위기는 정부의 공적 지원을 통해 함께 연대하고 협력하는 공공성 차원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임은희(43)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지난달 26일 <단비뉴스>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필요하면 전기수리 같은 것도 해줘요. 콩도 심어주고 깨도 베어주고….”도시락을 실은 냉동탑차가 ‘덜컹’ ‘끼익-‘하며 시골길을 달린다. 운전석엔 까만 마스크를 쓴 조경수(53) 씨가 앉았다. 그는 2012년부터 제천시니어클럽에 소속돼 도시락을 배달하는 운전기사다. 시니어클럽 소속 오색정식품제작단에서 만든 도시락을 혼자 살거나 몸이 불편한 노인에게 배달한다. 그는 매일 170~200km 정도 운전한다. 경북 상주에서 서울까지 매일 달리는 셈이다.익숙한 경로라 속도를 낼 법한데, 조경수 기사는 조수석에 앉은 기자를
서울 한강 하류의 선유도는 산이 섬이 됐고, 강 건너편 난지도는 모래섬이 산이 됐다. 인간사회의 문명화는 자연파괴라는 대가를 치르며 이뤄져왔다. 한강 하류의 명승이었던 해발 80m 선유봉은 일제 강점기 여의도 개발을 하면서 평평한 섬으로 전락한 반면, 난지도는 서울이 급속히 커지면서 야트막한 모래섬에서 해발 98m 쓰레기 산으로 솟아올랐다. 인간의 뒤늦은 반성과 자각으로 파괴된 자연을 복원하는 움직임이 일면서 선유도는 ‘물과 생명’을 테마로 한 공원으로 재생했고, 난지도는 물질문명의 발전이 가져올 후유증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생태공원
겸재의 ‘양천팔경’ 중 최고는 선유봉화보나 다른 그림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닌, 우리나라 산수를 직접 가서 보고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은 한성의 주요 명승을 많이 그렸다. 그는 65세에서 70세까지 지금 서울 양천구 일대인 양천현감으로 있으면서 ‘양천팔경첩(陽川八景帖)을 남겼다. 양천현 일대에서 경관 좋은 곳을 골라 화폭에 담았는데, 개화사∙귀래정∙낙건정∙선유봉∙소악루∙소요정∙양화진∙이수정 등 여덟 곳이다. 팔경 중 세 곳은 지금도 남아 있는데, 약사사로 이름을 바꾼 개화사와 선유
서울의 거리와 건물은 각양각색의 모양을 뽐내지만 시민들은 대개 무표정하다. 지하철과 버스는 바삐 움직이는데 승객들은 문명의 이기에 몸을 맡긴 채 휴대폰에 빠져 손가락만 움직일 따름이다. 요즘은 모두들 마스크를 쓰지만 지친 시민들 마음까지 감추지는 못한다.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떠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내가 찾아가는 휴식처가 있다. 도심에서 멀지 않고 남산이나 인왕산처럼 높지 않아 오르는 데도 부담이 없는 응봉산이 바로 그곳이다.자연이 만든 81m 높이 전망대 서울지하철 경의
충북 제천의 사립고 1학년 이예선(17) 양은 교실에서 성적 때문에 친구들끼리 서로 견제하는 상황을 종종 겪는다. 그는 “수업 시간에 깜빡 졸다가 필기하는 것을 놓쳤을 때 잘하는 친구에게 노트를 좀 보여 달라고 하면 빌려주기 싫어하거나 통째로 안 보여주고 딱 집어서 그 부분만 보여준다”며 “다들 인(in)서울 대학을 못 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스트레스가 정말 커서 입시경쟁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방대에 가면 성인이 되는 첫 출발점에서 낙오된다는 두려움이 있어 그럴 경우 재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다”며
지난 5일 오전 대전역에서 택시를 타고 “산내 골령골로 가주세요” 하자 택시기사가 힐끗 돌아보며 혼잣말처럼 툭 던졌다. “대전 사람들도 잘 안 가는 곳인데…”. 그도 초행길인지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출발했다. 대전역에서 동남쪽 옥천 방향으로 30분쯤 달려 도심을 빠져나가자 건물과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난 왕복 2차선 도로로 들어섰다. 택시가 임마누엘교회 앞에 이르자 표지판 하나가 나타났다. ‘이곳은 대전교도소 보도연맹 산내 학살 현장입니다.’
누룩은 시간이 띄운다.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딘 누룩은 ‘선생’ 칭호를 얻은 적도 있다. 고려 문신 이규보는 <국선생전>(麴先生傳)'에서 누룩을 선생으로 의인화해 당시 문란하던 정치와 사회상을 풍자했다. 그런 ‘국선생’이 근래까지 머물던 충북 제천시 누룩 발효 공장 ‘중앙곡자’가 세월의 무상함을 애써 견디다 58년 역사를 뒤로하고 사라진다. 누룩곰팡이 대신 먼지만 수북한 공장 충북 제천시 중심가인 명동에 있는 제천컨벤션센터에서 큰 길을 건너 작은 블록을 두 개 지나면 낡고 허름한 단층 건물이 나타난다. 2차선 도로를 따라 길게 서있
지난 2018년 7월 중순 어느 날 오후 5시 15분경, 제천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이 아무개(61) 씨는 퇴근을 하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다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껴 주저앉았다. 작업반장인 장 아무개(62) 씨가 급히 이 씨를 차에 태워 5시 30분쯤 제천의 한 병원으로 옮겼다. 이 씨는 뇌경색 진단을 받았으나 제천에는 뇌경색 수술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의료진을 갖춘 병원이 없어 큰 병원으로 옮겨야 했지만 갈 수 있는 병원을 제때 찾지 못했다.제천의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돼 있는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은 물론 인근 큰 도시의 병원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