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전 11시 무렵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황정산 수리봉. 배낭을 메고 비탈길을 10분 정도 올라간 강성열(53) 씨가 더덕을 발견하고 캐내느라 잠시 멈췄다. 약초꾼이자 심마니(산삼 캐는 이)인 강 씨는 “산약초는 요즘 이렇게 낮은 곳에선 잘 나지 않는다”며 상황버섯 등을 찾기 위해 비탈을 더 올라갔다. 약초꾼들이 ‘발로 차 버섯’이라 부를 만큼 가치 없는 덕다리버섯밖에 찾지 못한 그는 “버섯이 많이 보일 시기인데 예전만큼 보이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강 씨는 1시간여 동안 더덕 몇 뿌리만 챙긴 채 산을 내려왔다. 산속
전간술 씨는 1960년 강원도 울진군(현 경북 울진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무렵까지 살았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대학과 군복무까지 마친 뒤 85년 2월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건축공학을 전공한 그는 당시 울진원자력발전소(현 한울원전)를 짓느라 인력이 많이 필요했던 그곳에서 동아건설 울진지사 사원이 됐습니다. 만 스물다섯의 신입사원이었지만, 울진원전 1호기 토건공사 중 철골 부문 관리직을 맡아 인부들의 작업을 감독했습니다.울진원전 1호기 토건공사 현장감독으로 참여“그때가 한창 국가에서 원전 건설을 밀어붙이던 땐데, 막상 기술자들
‘고통과 착취의 상황에서 구조될 권리’‘보호받는 집, 서식지 또는 생태계를 가질 권리’‘법정에서 권익이 대변되고, 법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인간에게 착취, 학대, 살해당하지 않을 권리’‘소유되지 않고 자유로워질 권리, 또는 그들의 권익을 위해 행동하는 보호자가 있을 권리’지난 1일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 앞. ‘동물권리장전’(Animal Bill of Rights)의 5개 조항이 각각 적힌 만장 10개가 범선의 돛처럼 바람을 버티며 서 있었다. 그 앞으로 검은색과 붉은색 옷을 입은 남녀 200여 명이 각각 한 손에 장미 모양 조
24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역과 숭례문 인근에서 ‘924 기후정의행진’이 열려, 주최 측 추산 3만 5천여 명(경찰 추산 1만여 명)이 ‘긴박한 기후위기 대응’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이날 집회에는 녹색연합, 청소년기후행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400여 단체가 참여했고 충북, 제주, 부산 등 지역단위 참가가도 많았다. 기후정의행진은 2019년 처음 열린 후 코로나19로 중단됐다가 3년 만에 재개됐는데, ‘이번 행진은 국내 기후행동 가운데 최대 규모’라고 주최 측이 밝혔다. 2019년 행진에는 주최 측 추산 7000여 명이 참가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탈화석연료’등을 추진하면 석탄 등 퇴출되는 산업의 노동자와 사업자, 지역주민들은 피해를 보게 된다. 에너지전환 등의 과정에서 기존 이해관계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회적으로 비용을 분담하자는 것이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의 취지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봉래동 한일빌딩 8층 홀에서는 녹색전환연구소 주최로‘2022 정의로운 전환 연속 포럼’이 열렸다. 한국과 독일의 전문가들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법과 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했다.독일의 성공적 전환 비결은 ‘모든 이해관계자의 참여’독일의 기
“사회적 여론은 기후변화 대응, 탈석탄에 대해 전반적인 동의가 있다고 봐요. 사실 국회가 지금 눈을 감고 있다고 봅니다. 국민동의청원을 통해서 이런 시민들의 요구를 전달해보고자 하는 취지입니다.”지난달 31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신규 석탄발전소 철회를 위한 탈석탄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기후위기의 주범 중 하나인 석탄발전소 허가를 취소하고 재생에너지 전환을 촉진할 ‘탈석탄법’을 제정하라는 청원이다. 이 청원을 올린 이지언(40)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단비뉴
“햇빛에 비치면 날개가 돌아가요!”지난달 17일 오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충청북도교육청환경교육센터 ‘와우’(WOW)의 3층 초록교실. 손바닥만 한 태양전지판을 하늘색 회전날개에 연결하며 학생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까만 태양전지판을 햇빛에 노출하면 날개가 돌아가며 바람을 일으키는 간단한 실험 세트는 태양전지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교육 도구다. 조립을 마친 학생 13명은 각자의 작품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햇빛이 쨍쨍 비추자 회전날개는 더 빠르게 돌았다. 학생들은 “우와!”하고 환호하며 날개에 얼굴을 바짝 대고 바
"과학이 파이팅만으로 될까요?"2017년 11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공청회장. '파이로프로세싱(건식재처리)' 예산안심사를 위해 전문가 진술을 듣는 자리에서 신경민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에게 따지듯 물었습니다. 앞서 황 교수는 국내 원전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재처리해서 부피와 독성을 줄이기 위해,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 기술개발에 계속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신재생에너지나 반도체 개발비용의 10분의 1 혹은 100분의 1만 투입해도
“이곳은 우리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를 묻은 곳입니다. 큰 고통을 치르면서 말이에요. 이곳은 당신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건들지 말아야 하는 곳이죠. 절대 가까이 오면 안돼요.”느리고 낮은 목소리의 내레이션과 함께 카메라가 어두컴컴한 지하터널 안으로 천천히 들어갑니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탁’ 하고 성냥불을 켠 남자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비밀을 털어놓듯 말합니다.“여기는 당신들이 와서는 안 되는 곳, ‘온칼로’입니다. 은신처(hiding place)라는 뜻이죠.”세계 최초의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온칼로’2010년 마
지난달 30일 오후 1시쯤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6리 소돌항. 거세게 내리던 비가 조금 잦아든 항구에는 이따금 파도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뿐, 오가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멀리 방파제 끝으로 빨간 등대가 보이고, 부두에는 출항하지 못한 소형 어선 20여 척이 물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배들이 오가지 않아 더욱 투명한 바닷물 속으로 해조류(바닷말)가 거무스레하게 군락을 이룬 모습이 넓게 펼쳐졌다.이렇게 해조류가 번성한 곳을 ‘바다숲’이라고 한다. 해양 생물의 서식지가 되는 바다숲은 어족자원을 풍성하게 할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처리할 방법도 없는 핵폐기물을 계속 만들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외부) 임시 저장시설에 쌓아두고 있는 건 우리가 보기엔 완전히 바깥에 그냥 방치해 놓은 상태로 보여요. 원전보다 더 위험한 게 핵폐기물인데 도대체 저걸 다 어쩔 거냔 말이에요.”경주 월성원전 인접지역 주민의 이주를 요구하는 나아리 이주대책위원회 황분희 부위원장은 2017년 5월 4일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전홍보관 앞 농성천막에서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목소리를 높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주민들이 멀리 이사할 수 있도록 한국수력
2017년 6월 19일 오전 10시,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서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이 열렸습니다. 무대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과 인근 월례초등학교 학생 8명이 나란히 놓인 9개의 버튼을 동시에 누르자 ‘더 안전한 대한민국’이 한 글자씩 적힌 하늘색 대형 풍선들이 행사장 스크린 위로 둥실 떠올랐습니다. 지역 주민과 한수원 임직원 등 참석자 200여 명은 힘찬 박수로 호응했습니다.과거 정부 원전 운영 투명성 부족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고리1호기는 지난 40여 년간 전력생산으로 경제
마을 단위로 웅성웅성 버스에 오른 주민들. 처음엔 대피 훈련인 줄 알고 별생각 없이 모였다가 ‘발전소가 터졌다’는 얘기를 듣고는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어린아이를 끌어안는 젊은 엄마, 버스에 같이 타지 않은 아들 때문에 애를 태우는 노모. 버스 운전대를 잡은 처녀는 어떻게든 원전에서 멀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페달을 밟지만, 곧 망연자실합니다. 너나없이 몰려나온 차들 때문에 다른 도시로 나가는 길이 꽉 막혀버렸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몰려오는 방사능 구름.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정신없이 달아나지
“배추가 꿀통이 찬 거예요. 속썩음병이라고 그러는데, 이게 있으면 팔아먹질 못해요. 이게 기후가 갑자기 더워져서, 날이 가물다가 갑자기 비 오고 이런 상태에서 썩은 거예요. (배추를) 잘라봤는데 이런 거는 전량 폐기처분돼요. 저기 (상자에 담아놓은) 배추가 다 처리될 것 같아요.”지난달 14일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의 한 저온 저장고. 무와 배추, 양상추 등을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는 윤광진(50) 씨는 잎이 누렇게 변한 배추를 들어 보였다.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온이 지속돼 정상적으로 영글지 못하고 속이 썩어버린 배추다. 윤
어린이날 공휴일이었던 2017년 5월 5일 오후 4시쯤, 하얀색 중형 승용차 한 대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경주 시내 첨성대 부근에서 약 10km 떨어진 현곡면 가정리 구미산 계곡으로 달렸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김광희 교수였습니다. 그는 학부생인 두 제자와 함께 공터에서 내린 뒤 차 트렁크에서 삽, 호미 등 연장과 방수비닐을 꺼내 들고 군데군데 잡초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풀밭으로 들어갔습니다.비 오는 날 구미산 계곡으로 달린 이유는작업복 소매를 걷어붙인 두 남학생이 장갑을 끼고 민첩하게 움직였습니다.
기후위기로 극단적 날씨가 잦아지면서 온열질환 등 폭염에 희생되는 취약계층도 늘어나고 있다. 녹색당 정책위원회는 지난 10일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폭염 정책 토론회’를 열고 건설노동자, 노숙인, 이주민, 쪽방주민 등 사회적 약자 보호 대책을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지현영(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전재희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실장, 정동헌 민주노총 쿠팡물류센터지회 동탄분회장,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상임활동가, 하상목 전 응급의료센터 간호사, 이치선 녹색당 정책위원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곳에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가 있다. 합수머리를 꼭짓점 삼고 두 개의 강줄기를 따라 삼각형으로 펼쳐진 남계리는 대부분의 땅이 쌀농사를 짓는 논이다. 논둑 곳곳에는 ‘무농약 벼’를 알리는 팻말이 세워져있다. 지난달 23일 오전 남계리 1340번지 논두렁에 등산용 신발과 모자 등 다양한 작업복을 차려 입은 남녀노소 2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익숙한 듯 낫을 들고 논두렁에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를 베기 시작했다.“이거는 베도 되는 걸까요?”농부 행색 갖췄지만 ‘벼’와 ‘피’ 구분은 어려워허벅지까지 올라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