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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아픔’을 보상하고도 남을 탁 트인 전망부산은 해변에서 시작해서 산골짜기와 산등성이로 기어 올라간 도시다. 금정산 백양산 엄광산 구봉산 등 높이 300∼600m의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지만 그 연봉 너머로 도시가 팽창한 지 오래다. 종아리 굵어질까 걱정하는 중학생이든 가파른 길 노심초사하는 운전자든 부산의 구릉들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러나 관광객에게는 부산의 옛 모습이 살아있는 곳이고 무엇보다 탁 트인 시선을 제공하는 것이 일품이다. 한겨울에도 등에 땀 한 줄기 내게 하는 산복도로에 오르면 부산의 역사는 덤으로
가시리마을이 공동목장을 보존한 이유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는 510가구가 모여 사는 중산간 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넓게 펼쳐진 목장에 한가로이 서 있는 풍력발전기가 환영 인사를 건넨다. 가시리마을은 제주도가 ‘2030 제주 탄소제로 섬(Carbon Free Island)’ 전략의 하나로 추진 중인 국산화풍력발전 실용화사업 추진 대상지역으로 선정됐다. 이 전략은 제주의 육상과 바다에서 생산된 풍력으로 2030년까지 제주전력 수요의 100%를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가시리는 마을 안쪽 주거지가 아닌 공동목장지역에 지난 201
2016년 12월 28일, 한일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합의 발표 1년 째 날, 부산시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우뚝 솟았다.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가 세웠다. 부산 동구청은 불법 적치물이라며 강제로 옮겼다. 동구청 홈페이지가 마비되고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동구청은 12월 30일 무릎을 꿇었다. 소녀상 재설치 허용. 12월 31일 소녀상은 일본 영사관 앞에 다시 섰다. 제막식도 치렀다. 이후 시민단체 ‘부산 겨레하나’의 회원들이 소녀상을 지킨다.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산시민들을 만나봤
11월 12일 백만 개의 촛불이 타올랐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그 현장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 느꼈다. 거대한 광화문광장이 팔을 펼 수도 없을 만큼 비좁아졌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모두의 얼굴에 희망이 담겨 있었다. 내 함성이 옆 사람 함성과 합쳐지자 땅이 흔들렸다. 모두가 전율했고, 대통령이 하야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순진했다. 대통령은 예상을 뛰어넘는 상대였다. 11월 19일 집회를 거치면서 퇴진을 외치는 함성은 더욱 커졌지만, 대통령은 그럴수록 청와대 문을 더 굳게 잠갔다. “5천만이 외쳐도 하야하지 않을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네 살배기 원아를 강제로 재우다 질식사하게 한 사건의 공판에서 공소유지 결정이 내려졌다. 10일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 2호 법정에서 지난 9월 7일 제천 장락동의 한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영아 사망 사건의 1차 공판이 열렸다.피의자는 어린이집 보육교사 천 모(여·43) 씨로 피해자 최 모(4) 군이 점심 식사 후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최 군을 이불로 덮어씌워 몸을 압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 군이 움직이지 않자 천 씨는 보육일지를 쓰기 위해 자리를 비운 채 약 50분간 최 군을 내버려 두어 사망에 이르게
<보보담>은 한국의 인문 풍경을 담고 글로 풀어내는 잡지다. LS그룹의 후원을 받는 LS네트웍스에서 발간하기 때문에 구독신청자에게 무료로 배송된다. <보보담> 편집주간이자 LS그룹 구자열 회장의 뜻이 있기에 가능하다. <보보담> 이지누 편집장은 그를 ‘독특한 회장’이라고 소개한다. 백제가 남긴 유적지는 적막하다. 안내표지판을 따라 도착한 곳은 대부분 넓은 공터와 산자락뿐이다. “나라가 망하니 산과 강물만 남았네” 두보의 술회가 눈 앞에 펼쳐진다. ‘승리자’ 신라가 남긴 찬란한 문화와 비교되어 더욱 처량해 보이는 곳. 세명대 저널리즘
7일 아침 7시 서울 서대문형무소 앞. 노란 단체복을 맞춰 입은 남녀 70여 명이 설레는 표정으로 자전거에 걸터앉았다. 이날부터 충청북도 제천에서 열리는 ‘제천의병제’를 알리기 위해 행군을 시작하는 자전거순례단이다.이들이 전세버스를 타고 제천에서 출발한 시각은 새벽 4시쯤. 행군 채비를 하고 집에서 나선 시각은 3시쯤. 잠을 설치게 하는 일정에 불평을 털어놓을만도 한데 그런 이는 아무도 없었다. 헐벗고 굶주린 채 군경에 쫓기는 의병들에게 어디 편안한 밤이 있었으랴. 도보로 행군하던 의병에 견주면 자전거는 미안한 마음이 드는 교통수단
국내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서울 가락시장은 밤에 살아난다. 청과직판상인은 새벽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납품업자들은 아침 영업시간 전에 새벽시장을 찾는다. 상인들은 납품업자들보다 먼저 시장에 나가 채소와 과일의 신선도를 살핀다. 그들의 일과는 다음 날 오전 11시쯤에야 끝난다. 집으로 돌아가 잠만 자고 오후에 나와 다시 장사를 준비한다. 지난 9월 29일 아침 9시. 녹색 조끼를 입은 300여 명 가락시장 청과직판상인들이 서울 송파여성문화회관 6층 대강당에 모여들었다. 피곤한 모습이 역력한
애물단지 자연조건이 보물단지로, 남해 ‘다랭이마을’45도에서 70도에 이르는 산비탈에 108개 층층 계단과 680여개 논이 펼쳐진다. 남해군 홍현리 가천마을, 일명 ‘다랭이마을’은 설흘산 자락 층층이 다랭이논을 만들어 농사짓고 살았다. 논은 3평부터 300평까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쓰고 다니는 삿갓 밑에 한 배미의 논이 있었다는 데서 ‘삿갓배미 논’이라 불리는 조그마한 논에는 산자락에 힘겨운 삶을 일군 어머니들의 노고가 담겼다. 바다가 인접해 있지만 파도가 높아 어업도 불가능했던 터라 산을 한 땀 한 땀 일궈 농사지어야 했다
여름이 한창일 즈음, 빽빽한 글자와 컴퓨터 모니터에 또 한 번 피곤함을 느꼈다. 인생에 지름길은 없을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책들과 신문, 컴퓨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심신이 지친만큼 즐겁게 여행하며 돌아다니는 곳보다는 조용히 걷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배론성지가 눈에 들어온 이유다.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신념으로 가득했던 공간이다. 문득 자문했다. 매일을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목숨까지 걸 만큼 무언가를 위해 간절하게
매일 모니터와 책 속 빽빽한 글씨와 씨름하다 보니 하늘과 나무, 짙푸른 공기를 잊고 살았다. 기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면서도 마음처럼 쉽지 않은 현실을 마주할 때 근심과 걱정이 보란 듯이 밀려들었다. 자연을 등지고 속세에서만 아등대니 꿈을 향한 마음이 탁해지며 어그러졌다. 자연을 맛보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동기들과 길을 나섰다. 이 나라에서 마음 비우는 ‘해우소’가 가장 아름답다는 곳, 산 높은 곳에 있어 찾아가는 이들이 녹음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곳, 정방사로 향했다.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답다고 해서 퇴계 이황이 이름 지은
첫인상을 결정짓는 시간은 단 3초다. 우리 뇌가 처음 지각한 것을 사전정보 없이 처리하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는다. 첫인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사람도 사물도 그리고 지역이나 풍경도 그러하다.서울·경기도 토박이인 나는 올해 초 처음 제천에 내려왔다.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입시면접이 끝나고 시내로 나가면서 본 의림지는 신비로웠다. 겨울 저녁 6시 경 어둑해진 하늘을 배경으로 의림지는 푸르스름했다. 푸르스름하게 투명한 저수지, 단아한 정자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거뭇한 소나무 길이 버스타고 가는 내 눈에 담긴
불취무귀(不就無歸). ‘이루지 못하면 돌아가지 않는다.’ 다산이 모시던 조선의 스물두 번째 왕 정조가 화성 동쪽 군 지휘소 연무대에서 외친 건배사다. 연무대에는 화성 축조에 힘쓴 기술자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수라간에서 준비한 반건조 대구포 요리를 안주로 왕과 함께 취할 때까지 마셨다. 다산의 시대에는 제왕과 기술자가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멸시의 시대’가 도래했다. 정조와 다산의 ‘애민사상’은 온데간데없고 기념식 축사에서만 ‘존경하는’이라는 형용사를 국민 앞에
도시 일상에서 농사가 잊힌 지 오래다. 도시인들은 먹거리를 만드는 농부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도시와 농촌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농부시장’이 도심에 등장했다.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농부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먹거리를 사고파는 ‘얼굴 있는 농부시장’, 곧 줄여서 ‘얼장’이 열린다. 얼굴을 보고 나누는 인사처럼, 직접 만나 농산물을 사고 파는 농부와 소비자 사이에는 신뢰와 친밀감이 쌓인다. 농부가 정성을 담아 가꾼 농산물과 가공품으로 건강을 찾는 것은 덤이다.‘얼장’은 도심 속에 농부들과
매년 봄이면 언론은 떠들썩하게 개화시기를 알린다. 때맞춰 꽃은 북쪽으로 올라가고, 상춘객들은 남쪽으로 내려간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지역농업문제세미나' 참가자들은 지난달 3일 경남 하동으로 봄을 만나러 갔다.여러 겹 껴입고 간 옷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따뜻했던 전날과 달리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이러다 만개한 벚꽃이 다 떨어져버리면 어쩌지? 안타까움을 안고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로 향한다. 벚꽃을 보러 온 상춘객의 자동차 행렬이 섬진강 양쪽 강변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평사리로 향하는 19번
순천의 바닥과 천장은 넓다. 너른 들에는 갈대숲과 정원이 펼쳐지고, 공활한 하늘에는 철새가 날아든다. 2010년 UN이 공인하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 우리나라 최초로 선정된 바 있는 순천의 풍경이다. 땅과 하늘의 생명이 약동하는 곳, 순천을 지난달 2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농업농촌문제세미나' 참가자들이 찾았다. '분수에 맞게 살라'는 바오밥나무의 교훈순천만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건 생태체험관이다. 사전에 예약하면 국가정원 해설사가 설명을 해준다. 생태체험관에서 맨 먼저 눈길